과 행사나 써클 행사때, 늘 음악에 관한 숙제를 맡았다. 특히, 12현 포크기타를 들고다니며 행사때 반주를 하곤 했지. 한가지 불문율은, 절대 나한테는 노래 시키지 말기. 숫기가 없어 남 앞에 혼자 서는건 늘 떨렸으니까. 조 페리가 담배를 물고 기타를 치는 모습이 길게 붙어있고, 조그만 음반자켓 사진들이 바둑판처럼 빼곡하던.. 속리산 여행때도 제주도 졸업여행 때도, 각종 행사 때마다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12현 기타. 친하기 전.. 딱 한번 그사람 앞에서 노래한 적이 있었지, 'Mr. Lonely' ..
地球라는 이름의 작은 별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풀밭일 테고 머리카락에서는 오이 냄새가 날 것이 분명합니다 별이 반짝이듯 눈을 깜박거릴 터이니 반지도 소용없고 십자가도 필요없겠지요 그 사람이라면 정숙하지 못한 토요일 오후의 벤치 위에 말없이 앉아 있는 남자를 부풀게 하여 연두색 비명소리를 지르게 하고 마침내는 우리나라 하늘의 별이 되게 만드는 마술 손을 가지고 있겠지요 (게으르긴 해도 쉬지 않고 달리는 낡은 화물열차처럼) 나는 그 사람에게 갑니다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그러나 뜨거운 작별의 입맞춤으로 고단한 그 사람이 푸른 별 아래 잠들고 나면 벗어 놓은 목걸이처럼 그옆에 눕기 위하여
건너편 처녀 방의 커튼이 흔들리네 아마 이쪽을 보고 있으리라 내가 있는가 하고 낮에 질투한 나의 관심이 지금도 가슴 어딘가 남아 있는 줄 알고 그러나 분하게도 어여쁜 그 처녀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네 자세히 보니 커튼의 흔들림은 저녁바람의 장난이었네 < 자만심 > / 괴테 ...藝盤예반 *.*
그 당시.. 대부분 그렇듯 영화는 즐겨봤지만, 연극은 별로 가까이 할 기회가 없다. 그 사람이랑 몇 번 갔던거 같은데, 추운 날씨 대구역 옆 시민회관에서 계단을 팔짝팔짝 오르내리며 그사람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어. '빨간 피터의 고백' .. '초콜릿 데이트' ..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이다. 연극이란걸 처음 보면서, 지루할 것 같던 기대(?)를 철저히 부셔버렸던 추송웅.. 어두운 조명아래 철장을 넘나들던, 황홀하기까지 하던 1인극. 그날.. 아주 밤늦게까지 동성로를 헤맸었다.
...... 장미의 꽃말은 아름다움, 그리고 불타는 사랑이다. 우리나라에서 장미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시대부터였다고 하며 오늘날과 같이 향기롭고 요염한 장미는 중국의 시네시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설에 의하면 장미는 대개 사랑 때문에 피흘린 자리,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간 자리에서 피어난 꽃으로 되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꽃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병들어 죽거나 늙어 죽거나 차에 치어 죽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고급스러운 낭만인가. <이외수> ...藝盤예반 *.*
...안개의 도시 춘천에서는 그 어떤 사물 앞에도 안개라는 단어를 관형어로 놓을 수 있다. 안개극장 아래 있는 안개다실에는 안개커피와 안개음악이 있다. 지금은 오후 두 시. 손님은 서너 사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 첼로 한 타래가 축축하게 젖은 채 실내를 굽이쳐 다니는데 안경잡이 김형이 담배를 피우다 말고 침묵 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쳐든다. 연애하고 싶다.....라고 안경알에 씌어져 있다. < 이외수 > ...藝盤예반 *.*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더만, 예전의 중앙공원. 또.. 두류공원, 앞산공원.. 달성공원, 공원이 많았어. 특히 도심 가운데 중앙공원, '나드리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근처라 몇 번 들렸었다. 공원답지 않은 입구 매표소.. 몇 종의 동물도 있었던가? 하여튼 시내 한복판에 좀 이색적인 공간이었지. 공원에 가면 그사람은, 특별히 말이 없었다. 그냥 이리저리 걷기만 하고.. 나도 한발짝 뒤에서 따라 걷기만 했었고. 왜.. 공원에만 가면 말이 없었을까..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막상 가서는 안하게 되는지, 아님.. 원래 공원이란 공간에서는 마음을 내려놓아 말이 없어지는지. 난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어.
특별히 맞춘 운명이 스스로의 속도와 주기로 인간을 찾아옵니다. 호된 따귀 한 대가 이번에도 찾아왔습니다. 자, 괜찮습니다. 산다는 일이 원래 그런 것. 얼추 올 때가 되었던 따귀였고 살짝 피하는 데 실패했을 뿐입니다. 운명은 거의 표적을 맞춥니다. 으스대던 얼굴이 한 방 먹으니 팡, 하고 큰 소리가 난 것뿐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니 자, 추스르고 일어나세요. 호수의 물결은 잔잔하고 저 멀리 산들은 눈에 덮혔습니다. 햇볕이 따사롭고 새들이 지저귑니다. 왜 이렇게 호된 따귀를 맞아야 했던가를 한 번 짚어 볼 필요야 있겠지요. 운명은 오늘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가끔 놀리고 호되게 때리기도 하겠지요. 맞으면서 조금씩 영리해지는 법입니다. 아직은 두들겨 맞을 일이 한참은 남아 있고 그리하여 어느 날 결정적인 타격이 찾아옵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