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
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

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
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 단단한 뼈 >   

                                                         / 이영옥           
 
                                                       ... 藝盤예반 *.*              
 


Dust in the Wind (From 'Queen of the Ring -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 Corey Taylor · Bad Omens · Aaron Gilh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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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 즐거운 제사   

                                                         / 박지웅           
 
                                                       ... 藝盤예반 *.*              
 


Memoria - Susanne Sundfø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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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바리게이트는
전경과 시위대 사이에 있었다, 지금 그것은
황량한 광장과 붐비는 도서관 사이에,
피켓 구호대와 냉소하는 군중 사이에,
한물간 금서(禁書)와 반질반질한 토익서적 사이에,
외로운 대자보와 주목받는 구인광고 사이에,
있다, 한때는 누구에게나 보였으나 지금
어느 눈뜬 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조차 없는.

오랜만에 학교를 들른 어느 선배는

사라진 담쟁이가, 들리지 않는 통기타 소리가,
생존게임에 목 매인 젊음들이, 무기노릇을 못하는
낙엽이, 대화 없는 술자리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무는 후배들이, 네온사인 아래의 토사물이
그저 두렵다 했다, 내가 알던 그 선배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는 건 나만의
헛된 기대였으리, 선배, 제발 솔직해지세요
그래, 솔직해지지, 사실은 세상이 두려운 거야,
바뀐 지 오래된 세상에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가
두려운 거야, 서른이 되어도 철들지 못한.

내년이면, 지긋지긋한 이곳과

'굿'바이는 못해도 '바이'바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만약 다시 신입생으로 돌아간다면, 만약 다시
어려진다면, 부질없이 마신 술을 모두 토해내리라
잔디밭에 널린, 엎드린, 찌부러진 꽁초며 병마개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보리라, 책보다 사람을
더 자주 보리라, 자유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게 프로포즈하는 숱한 자유의 정체를
다시 한번 캐내 보리라, 만약 다시, 만약,
'만약'이 혀끝을 맴돌 만큼 헛되었던가, 나는


      < 대학로에서   

                                                         / 양재숙           
 
                                                       ... 藝盤예반 *.*              
 


Crosby Stills & Nash : Wasted On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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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오솔길의 길목에 서고
싶을 때가 있다
쏟아진 함박눈에 주위의 사물이 몽땅 묻히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새삼 궁금해지듯
안개 속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를 반기고 인사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그런 일들이 결국
무가치하고 후회스런 일로만 남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네 삶이란 게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안개 낀 오솔길에 서서

사람들의 얼굴에 그려지는 슬픔과 노여움을
설령 기쁨일지라도
바라보기엔 마음이 혼탁하고 심란하지 않도록
그저 기억의 저편처럼 초연하게
안개 속에서
잔잔한 마음과 나직한 음성으로
서로를 느끼고 싶다

평소 잘 아는 오솔길일지라도

짙은 안개에 쌓일 땐 그 속에서
새로운 무엇이 생겨 신비스런 형상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


      < 안개  

                                                         / 안재동           
 
                                                       ... 藝盤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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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런 날 있지.
나뭇잎이 흔들리고
눈 속으로 단풍잎이 우수수 쏟아져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런 날 말이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은행잎보다 더 노랗게 물들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카락 생각 없이 바라보며
꽁무니에 매달려 바람처럼 사라지는
폭주족의 소음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런 날 말이지.
신발을 벗어들고 모래알 털어내며
두고 온 바다를 편지처럼 다시 읽는
지나간 여름 같은 그런 날 말이지.
쌓이는 은행잎 위로 또 은행잎 쌓이고
이제는 다 잊었다 생각하던
상처니 눈물이니 그런 것들이
종이 위로 번져가는 물방울처럼
소리 없이 밀고 오는 그런 날 말이지.


      < 편지 쓰고 싶은 날 >  

                                                         / 김재진           
 
                                                       ... 藝盤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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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
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솜
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
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

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
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

은 슬픈 女子.


   < 한 잎의 여자 >  

                                                         / 오규원           
 
                                                       ... 藝盤예반 *.*              
 


Woman in the Wings · Maddy P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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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닥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돋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 황인숙           
 
                                                       ... 藝盤예반 *.*              
 


Black Cat Woman · Geo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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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사람들의 거친 물살에 떠밀려
세상이 뱉아놓은 그물에
덥석 걸려들기도 하는
멍청한 섬이었다
세상은 물론 망망대해였다
그렇게도 용솟음치던 바다
내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섬 하나를 삼킨 아득한 바다
어둠만 꽉꽉 내 몫이었다
나는 바다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바다는 귀가 다 잘려나가고
원시의 칠흙 같은 소리만
우우- 내 귀를 때렸다
차츰 부력이 빠지기 시작한
섬,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멀리 희미한 등대들이
빠진 부력을 뗏목처럼 타고 올라
또 다른 어둠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로빈슨 크루소라고 이름 부르는
이상한 경보신호만 들리는 듯 했다

     < 멍청한 섬 

                                                 / 박선희           
 
                                                       ... 藝盤예반 *.*              
 


ISLANDS - King Cri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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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밤은 길다
수녀들이 지나가고
신부들이 지나가고
골판지 박스가 오고
신문지들이 오고
밤은 천천히 걷는다
소주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며
욕설을 폭죽처럼 터뜨린다
차곡차곡 쌓인 하루 위에 몸을 눕히면
잠 속으로 발자국이 찍히고
아직 밥을 먹지 못한 영혼이 휘파람 소리를 키운다
밤은 저 홀로 깊어가고
잠들지 못한 이들의 신발은
발레를 하듯 절뚝인다

    < 노숙일기 

                                                     / 전기철        
 
                                                       ... 藝盤예반 *.*              
 


바람과 나 ·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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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
나는 그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시인
모든 게 엉망이었을 때도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약물에 의존하려고도
가르침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잠을 자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시 쓰는 법을 배웠다.
바로 오늘 같은 밤
바로 나같은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이런 시를 위해.

    < 나의 시

                                                     / 레너드 코헨        
 
                                                       ... 藝盤예반 *.*              
 


Leonard Cohen -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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