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바리게이트는 전경과 시위대 사이에 있었다, 지금 그것은 황량한 광장과 붐비는 도서관 사이에, 피켓 구호대와 냉소하는 군중 사이에, 한물간 금서(禁書)와 반질반질한 토익서적 사이에, 외로운 대자보와 주목받는 구인광고 사이에, 있다, 한때는 누구에게나 보였으나 지금 어느 눈뜬 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조차 없는. 오랜만에 학교를 들른 어느 선배는 사라진 담쟁이가, 들리지 않는 통기타 소리가, 생존게임에 목 매인 젊음들이, 무기노릇을 못하는 낙엽이, 대화 없는 술자리가, 정치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무는 후배들이, 네온사인 아래의 토사물이 그저 두렵다 했다, 내가 알던 그 선배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는 건 나만의 헛된 기대였으리, 선배, 제발 솔직해지세요 그래, 솔직해지지, 사실은 세상이 두려운 거야, 바뀐 지 오래된 세상에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가 두려운 거야, 서른이 되어도 철들지 못한. 내년이면, 지긋지긋한 이곳과 '굿'바이는 못해도 '바이'바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만약 다시 신입생으로 돌아간다면, 만약 다시 어려진다면, 부질없이 마신 술을 모두 토해내리라 잔디밭에 널린, 엎드린, 찌부러진 꽁초며 병마개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보리라, 책보다 사람을 더 자주 보리라, 자유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게 프로포즈하는 숱한 자유의 정체를 다시 한번 캐내 보리라, 만약 다시, 만약, '만약'이 혀끝을 맴돌 만큼 헛되었던가, 나는 < 대학로에서 > / 양재숙 Crosby Stills & Nash : Wasted On The W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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