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시간이 지나니 둘이 다니는 것도 익숙하고, 주변에서도 CC로 인정하는거 같고, 허나 내 맘 속에 그사람을 담아도 담아도 끝은 없고. 마치, 다이어트는 언제 완성이지? 라고 물으면 끝이 없어, 평생 하는거야.. 하듯이 이.. 사랑이라는 녀석도 끝없이 가꾸어야 하는 것. 판단하지 말고, 규정짓지 말고, 밭갈고 물뿌리며 농사짓듯.. 끊임없이 돌보는 것. 하루하루.. 그렇게 무르익어가는 내 마음.
지금도 있나? 동아문화센터..동성로에서 반월당쪽으로 있었던가? 그 사람이랑 공연을 보러갔었다. 조동진, 장필순, 신촌블루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따로또같이, 들국화, 어떤날, 시인과 촌장.. 우리노래전시회 시리즈로 꽃을 피워 언더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진정한 아티스트들이 숱하게 피어나던 시기, 동아기획 사단의 뮤지션들이 자주 공연을 했었어. 화장실에서, 교복을 꽉 끼게 입고 들어오는 전인권을 만나기도 했고 '따로또같이'의 다시 볼 수 없는 무대도 몇 번 봤었고, 이정선과 엄인호의 기타배틀도 기억 속에 있어. 그 사람이랑 함께 하던 음악세상.. 그 때로 다시..
그땐 '대학가요제'라는게 큰 행사였다. 호프집 같은데서 우르르 모여서 보곤 했지. 근데 역시, 1,2,3회가 '전부(?)' 였던거 같아, 마치 록히스토리에서도 어떤 아티스트의 1,2집이 전설이듯이. 산울림, 따로또같이, 들국화, 어떤날.. 모두 1,2집이 '그 자체' 잖아? 어느 해, 그 사람이랑 모여서 음악감상실에서 방송을 봤었지. 그 날은 DJ들도 방송 접고는 대형화면으로 TV를 틀어줬거든. 기존의 팝이나 칸소네 등을 번안해서도 출전이 가능했던 그때, 기술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다양성이나 감성적으로는 더 풍요로웠던 그때. 詩를 가사로 했던 곡들도 여럿 있었다. 젊은이들의 사랑노래로 한동안 회자되곤 했어.
헤어진 지 일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것은 연민도 사랑도 아니고 일종의 병이라고 하더군 미친 거라고 말이야 태어나 단 한번 사랑이라고 느끼고 간직해 온 내 느낌과 감정들이 일년도 채 안돼서 깡그리 정리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이를 만나 태연하게 다시 사랑에 빠져 헤헤거리는 것이 정상인 거라면 그런 세상이라면 난 아주 더 미쳐 버리고 싶어 그리고 아주 나중에 나보다도 더 미치신 여자 한 분과 만나서 미친 사랑을 해보고 싶어
처음으로.. 그사람이랑 외박을 했어. 뭐 그런 외박말고, 과 써클에서 MT를 갔다는 거지. 남들은 잘도 자더구만 밤새 뒤척이다 새벽 일찌감치 일어났네. 텐트 밖으로 나와 서늘한 새벽, 빼꼼 햇살 아래 기타를 들고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지난 밤 캠프파이어..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즐겁게 노래부르고 마시고. 불꽃을 사이에 두고 그 사람과 정반대쪽에 자리한 기타맨. 세운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싼채 턱을 괴고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사람. 불꽃이 춤출 때마다 일렁이는 조명아래 그 사람의 얼굴톤이 달라진다. 드라이한 표정.. 불꽃 담은 눈망울에 슬픈 표정.. 이따금 힐끗 볼때의 날카로운 표정.. 손으로 가리고 살짝 하품할 때까지.. 뭇 모습의 사람.. 해서,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사람.. 하나 둘, 일어나 나오는 아침당번들 속에 코펠을 들고 내려오는 그사람. '쌀 씻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요?' 함께 한 첫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