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기.. 중앙공원 쪽 '무궁화 캐빈'? 인가 하는 디스코텍에서 종강파티를 했다. 자주 갔던 클럽이었지.. 뭐, 놀러간게 아니라 밴드 '피닉스'에 있으면서 다른 과 행사에 출장(?)을 갔었거든. 지하에 있는 클럽인데 천장이 꽤 낮아 이런저런 장식 아래 마치 정글 속 같은 독특한 분위기였다. 그 시절, 학과 행사라는게 그림이 뻔하잖아? 교수님 인사 간단히 끝나고.. 선물 증정하고, 그리고는 먹으면서 바~로 흔드는 거지 뭐. 디스코 타임과 블루스 타임이 반복되고 막간에 행운권 추첨하고. 정신없이 번쩍거리는 암흑 속 스테이지에 그 사람이랑 여전사 4인방을 중심으로 신나게들 노는데.. 그런 그 사람을 어둠 속에서 마음놓고 바라봤어. 시대를 막론하고 역시 그런거 같애. 예쁜 애들이 공부까지 잘 하고, 성격도 활발.. 리더쉽도 탁월.. 거기다 놀기도 잘하니. 음악 챙기랴, 여기저기 먹거리 챙겨주랴.. 사진기사 노릇하랴.. 소매 걷어올린 군복상의에 땀을 삐질삐질 흘린채, 드라이한 표정으로 찰칵 찍힌 한 컷.. 지금도 앨범에 꽂혀있는 모습이다.
냉천에서의 빗속데이트 이후, 우산을 같이 쓸 절호의 찬스가 생겼어. 다들 도서관에 있는데 예기치 않게 비가 쏟아지지 뭐야. 시내쪽 애들은 별 생각없이 왔지만, 압량벌쪽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터라 우산을 갖고 왔었거든. 좀 있다 그치겠지..라는 기대와 달리 꽤 굵은 빗방울이 잦아들 줄 모르고. 한참을 도서관밖을 내다보다, 그 놈의 오지랖이 또 발동을 한다. 코 앞이라는 운명(?)땜시 하숙방으로 가서 여분의 우산을 챙겨왔어. 왜냐믄, 그 놈의 여전사 4인방이 같이 있으니 그 사람만 쏙 빼서 나갈 순 없잖아. 그날.. 오지랖넓은 물자보급덕에 여전사들, 느긋하게 책보다가 저녁까지 먹고는 둘씩 팔짱끼고 운치있게 집에 갔어. 난?.. 야상 뒤집어쓰고 하숙방까지 구보했지 뭐..
중앙도서관에서 동성로 쪽으로 나가 대로변 버스정류장 쯤에, 2층인가? 3층에 '이탈리아노'란 레스토랑이 있었ek. 꽤 럭셔리한 실내장식에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 웨이트리스들이 서너명씩 줄을 서서 스탠바이하고 있던. 그 당시로는 꽤 그럴듯한 전문레스토랑이었어. 스테이크 값도 2~3만원대 였으니까 무척 고급이었지? 야채수프가 그렇게 새콤하게 맛있는지, 따뜻한 빵을 찢어서 버터를 발라 먹는게 그렇게 고소한지.. 한잔씩 곁들이는 와인잔이 그렇게 폼나는지.. 그때 알았어. 그 사람 따라 가끔 들렀던 그 곳, 한 보따리 모아둔 성냥갑속에 지금도 있다 이탈리아노..
"안녕하세요, 김지수입니다. 지금은 외출중이오니 메시지 남겨주십시오. 여자 분은 등급에 상관없이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남자 분은 등급에 따라서 사나흘 후쯤에 연락을 하도록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자고 한 짓이건만 새로 산 응답기에는 한 통의 메시지가 없다 단 한 번 아버지의 짧은 메시지 "난 몇 등급이냐? 이놈아!"
겨울.. 잠이 줄어드는 시간. 아니, 밤이 너무 길어 넉넉히 자도 밤이 끝나지 않아. 하숙생에게 겨울은 특히 불면의 밤이 잦지. 우선.. 그 놈의 연탄불은 어쩜 그렇게 시간조절이 안된대? 꼭 새벽2시 남짓이면 연탄을 갈아줘야 했어. 거기다 옆 방 놈들이 밑불을 바꿔치기 할까봐 감시도 해야하고. 특히 열받는 건.. 아궁이에 큰 찜통을 얹어 놓는데 이 녀석들이 더운 물을 수시로 퍼가는 거야. 어떤 때는 머리 감을 물도 모자라 낭패를 보는터라, 창밖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나가보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생활의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라도 정말 잠 못 이루는 까닭은, 차가운 방안 공기처럼 나를 깨워 흔드는 그 사람.. 그 향기 때문..
한 사람을 마음에 담는다는 거.. 흔히들 그러지만, 또 곧잘 그 사람을 비우기도 하잖아?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크고 작은 아픔으로.. 뭐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야. 해서, 일생을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마음에 담지. 근데.. 마음에서 영원히 비울 수 없는 사람도 있어. "죽음없이도 헤어진 따사롭던 당신은.." 이런 노랫말처럼 살아 숨쉬는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있지 못하는게, 그게 미완성의 운명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 내 혼줄이 마치 그림자처럼 그 사람에게 닿아있는.. 바로 그 사람.
막연히 바라고 원하는 걸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 자기 전에도 식사 전에도 꼭 한 마디씩 부탁 드리곤 했습니다 이젠 제게도 같이 느낄 수 있고 뭐든 주고 싶은 예쁜 여자 친구를 달라고 말입니다 몰래 몰래 나쁜 짓 몇번 한 거 말고는 정말 착하게 살아왔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때까지 써가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난 응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사랑을 예비하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섹시한 몸매까지 부탁한 적은 없었는데 「 Thank God 」 / 김지수 ...藝盤예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