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돌을 던져서 쫓아버릴 수 없고

당신, 칼로 베혀서 져버릴 수 없다

차마, 사랑은 물로 된 육체더라



   < 당신 
>
                                              / 서정춘          
 
                                                                                ... 藝盤예반 *.*              
 


Barry White - My First My Last My Everything ​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비'  (0) 2025.07.03
' 가을에 1' ♬  (0) 2025.06.26
'1980 가을 병동' ♬  (0) 2025.06.19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가을 감기' ♬  (0) 2025.06.05




겨우 익을 수 있었던 배들이
혼자인 남자들의 그 것처럼 매달려

가을비에 젖고 있다
세상에 넘치도록 계시다는 하느님이
내게는 없다 내가 보지 못한다
가을비 탓이라고 말해본다
그럴듯하다
아직도 이 지경에 머물고 있는
내가 갑자기 불쌍하다
찬비 맞고 헤매던 네가
가울비 탓이라는 나의 말 속으로
젖은 채 걸어들어온다 겨우!
지·나·간·다
절망이다
다시 돌아서는 게 보인다
네가 하느님이시다
나의 등뒤에 와 소리없이 앉는다
젖은 옷을 벗는다
너는
나의 등을 밀어준다
나는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한낮에 나는, 가을비 탓에 나는,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 가을비 
>
                                              / 정진규          
 
                                                                                ... 藝盤예반 *.*              
 


Rain Is Falling - Electric Light Orchestra ​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 ♬  (0) 2025.07.17
' 가을에 1' ♬  (0) 2025.06.26
'1980 가을 병동' ♬  (0) 2025.06.19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가을 감기' ♬  (0) 2025.06.05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음성을 만들어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 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 가을에 1
>
                                              / 기형도         
 
                                                                                ... 藝盤예반 *.*              
 


Leaves Falling · Kim Choo Ja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 ♬  (0) 2025.07.17
'가을비'  (0) 2025.07.03
'1980 가을 병동' ♬  (0) 2025.06.19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가을 감기' ♬  (0) 2025.06.05




내 오늘
무덤 속 죽음의 상자 같은
ㅎ대학 부속병원 신경외과 817호실

흰 침대 위에
교통사고로 쓰러진 어머니의 투명한 눈물울 내려놓고
긴 복도에 걸린 유리창 앞에
말없이 서다
내 손가락 하나 닿을 수 없는 창밖으로
하늘의 시신(屍身)이 떨어져 내리고
야윈 손을 들어
오직 무성한 전등불만 보석처럼 받쳐든 산동네 위
집집마다 대문이 걸리고
돌아보아도 하늘엔 단 한 개의 별
남은 별들은 몰래 집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 위로 내려왔다
저 아래 웅크린 도시
수많은 차량들이 개선장군처럼 달리고
8층에서 숨진 어린아이의 주검이
승강기를 타고 영안실로 내려가고
수술실에서 한 개의 다리가 잘려 나가는 소리
보행기를 타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구르는
중년사내 곁으로
주사기를 든 간호원이 패잔병처럼 지나가고
보호자들이 뛰어다니는 복도의 흔들림
흰 가운을 걸친 수련의들은
어디론가 재빨리 잠적해 버렸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덜그럭거리며
내 귓가를 스쳐가고
병원은 저 깊은 죽음의 늪속으로 가라앉고
흰 병동이 조금씩 금가는 소리
불빛을 흔드는 중환자의 마지막 신음
옥상을 두드리는 어둠의 망치 소리
살아있는 환자들은 손갈퀴 들어
벽 속에 희디힌 구멍을 뚫고
죽은 사람들 하나씩 장의사차를 타고
서녘 끝으로 소리없이 떠나가고
산부인과 병동에선 다시 한 갓난아이가
목숨의 은방울 흔드는 소리.

   < 1980 가을 병동 
>
                                                   / 정성수       
 
                                                                                ... 藝盤예반 *.*              
 


Turn, Turn, Turn! / 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 · Judy Collins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비'  (0) 2025.07.03
' 가을에 1' ♬  (0) 2025.06.26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가을 감기' ♬  (0) 2025.06.05
'그해 가을' ♬  (0) 2025.05.29




신장이식수술을 끝낸 친구는 간호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죽으러 가는 잎새들로 바람은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며칠전에 만난 까치에게 눈인사를 했다
개미처럼 달려가고 싶다 어머니의 젖을 물러,
수양버들 이파리가 흙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은 그리움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결국 믿음이 없어 떠나왔던 것이다.
수레바퀴 국화를 선물했던 누이의 탓이 아니다.
나의 생태계, 손금은 알리라
다시는 나의 손으로 포장할 수 없는 사람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던 날의
나를.
사실은 우리 모두 귀족이고 싶었다.
토익점수로만 나를 계산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
인간임을 기억하고 싶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편지쓰기를 좋아했다. 겨울철이 와도 거리엔 영정을 든
여인들이 추엽처럼 아스팔트를 떠돌았다.
사진을 보면 천년을 썩지 않을 눈망울들,
누이가 사 준 볼펜을 잃어버려 더더욱 어쩔 줄 모르겠던 한 해가
초상집 잉걸불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기에 살고 싶었다
형광등이 떨어질까봐 두려워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취방 벽에
이름 석자를 적었다.


  < 중세의 가을 4 
>
                                                   / 노만수       
 
                                                                                ... 藝盤예반 *.*              
 


I Was Only Joking · Rod Stewart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을에 1' ♬  (0) 2025.06.26
'1980 가을 병동' ♬  (0) 2025.06.19
'가을 감기' ♬  (0) 2025.06.05
'그해 가을' ♬  (0) 2025.05.29
'노인과 수레' ♬  (0) 2025.05.22





문 밖에 누워 바람 속의 문풍지와 같이 몸을 떨며 우물처럼 깊은 잠의 수렁으로 떨어진다 잠 속
에 거울 하나 빠안히 눈뜨고 앉아 거꾸로 떨어지는 나를 지켜본다

네게선 악취가 나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서는 사람들 등에다 대고「아니다 나는 죄 없다」외치려 하니 입 속에서

말라버린 꽃잎들팔랑팔랑 날아올라 어둠 속을 떠다니고 내 몸도 떠오른다

들패랭이 들국 미나리아재비 청도라지……

알 수 없다 그리운 꽃들의 이름을 부르면 왜 황량한 들판이 보이는지 휘청휘청 들을 건너가는

허수아비 보이는지 허수아미 가도 가도 그 자리, 돌아보면 빈 얼굴인지

우물바닥에 누워 가버린 여름의 유리조각 햇살에 가슴을 찔린다「내 죄다 모두 내 죄다」클클

웃었더니 이마에 와 닿는 서늘한 들꽃의 향기, 가만히 눈을 떠보면 허기진 가슴을 채우는 씁쓸
한…… 아스피린의……


        < 가을 감기 >    

                                                         / 김형술             
 
                                                       ... 藝盤예반 *.*              


 


LeBlanc & Carr - Falling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0 가을 병동' ♬  (0) 2025.06.19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그해 가을' ♬  (0) 2025.05.29
'노인과 수레' ♬  (0) 2025.05.22
'자서전' ♬  (0) 2025.05.15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
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
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
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
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
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
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
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해머
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
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
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할 때
지난 여름 번데기 사 먹고 죽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실성한 늙은이와 천부의 백치는
인골로 만든 피리를 불며 밀교승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만날 시간을 정하려 할 때 그 여자는 침을 뱉고 돌아섰다
아버지, 새벽에 나가 꿈 속에 돌아오던 아버지,
여기 묻혀 있을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세상에서 재미 못 봤다는 투의 말버릇은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이 결심도 농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나 나둥그러진 매미를 주워
성냥갑 속에 모아두고 나도 누이도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 그해 가을 나는 어떤 가을도 그해의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것도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비하시키지도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 온 날들과 살아 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 그해 가을 >    

                                                         / 이성복             
 
                                                       ... 藝盤예반 *.*              
 


John Michael Howell - Once In A Lifetime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의 가을 4' ♬  (0) 2025.06.12
'가을 감기' ♬  (0) 2025.06.05
'노인과 수레' ♬  (0) 2025.05.22
'자서전' ♬  (0) 2025.05.15
'바람에 관한 명상 수첩' ♬  (0) 2025.05.08


노인은 내리막길처럼 몸을 접는다
밤새 쌓인 어둠을 수거하고
수레 위 차곡차곡 재활용 상자를 쌓고 있다
상자마다 뚜렷이 접힌 흔적들
그 角이 포개져 품을 만든다
바퀴가 회전할 때마다
노인의 야윈 마디가 함께 맞물려 삐꺽거린다
어떤 세월이 구부러진 角을 만든 것일까
곧게 내리던 하얀 눈들도 굽은 등위에서
한번 더 미끄러지고 있다
구부러진 길이 골목을 품듯,
노인은 점점 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수레 위 차곡차곡 접힌 生이 묵직하다
헉, 헉 뜨거운 입김이 골목을 큰길로 끌어내고 있다
품 가득 곧, 햇살이 안겨올 것이다
골목을 다 빠져나올 무렵
축이 닳은 바퀴가 성급히 회전을 한다
끌어온 길을 축으로 힘껏 잡아당길 차례다
노인은 마지막 角을 그려내고 있다

        < 노인과 수레 >    

                                                         / 안시아             
 
                                                       ... 藝盤예반 *.*              
 


Manfred Mann – There Is A Man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감기' ♬  (0) 2025.06.05
'그해 가을' ♬  (0) 2025.05.29
'자서전' ♬  (0) 2025.05.15
'바람에 관한 명상 수첩' ♬  (0) 2025.05.08
'달몸살' ♬  (0) 2025.04.24







1943년 10월 19일 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몇개의 느낌표(!)와
몇개의 말줄임표(……)와
몇개의 묶음표( < > )와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 그만둔
몇개의 쉼표(,)와
아직도 제자리를 못찾아 보류된
하나의 종지부(.)로 요약된다.

       < 자서전 >    

                                                         / 임영조             
 
                                                       ... 藝盤예반 *.*              
 


Ringo Starr - Photograph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해 가을' ♬  (0) 2025.05.29
'노인과 수레' ♬  (0) 2025.05.22
'바람에 관한 명상 수첩' ♬  (0) 2025.05.08
'달몸살' ♬  (0) 2025.04.24
'호박꽃' ♬  (0) 2025.04.17

1.





1.
바람은 정지해 있으면 이미 바람이 아니다.

2.
그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바람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 방황해 보라.

3.
어디를 가도 바람은 그대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봄날 독약같은 사랑에 신열을 앓다가 산에 오르면, 소리없이 흩날리는 산벚꽃.
잠시 그대 곁에 머무르다 등성이를 넘어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여름날 사무치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바다로 가면, 몸살을 앓으며 일어서는 물보라.
한사코 그대를 뿌리치며 수평선으로 내달아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가을날 방황에 지친 그림자를 끌고 들판에 이르면, 스산하게 흔들리는 억새풀.
참담한 그대 가슴을 난도질하고 떠나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겨울 밤 불면으로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꿈결에도 몰아치는 북풍한설.
아직도 그대는 혼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4.
바람은 그대를 남겨둔 채 어디로 떠나가는 것일까.

바람을 따라 떠나간 이름들의 행방을 그대는 모르고 있다.
불면으로 뒤척이는 천리객창 그대도 허공을 떠도는 혼백이 되어
바람의 울음소리를 들어 보라.

5.
도시는 바람의 무덤이다.

이제는 아무도 서정시를 쓰지 않는다.
감성의 서랍 속에는 감성의 먼지만 쌓이고, 지성의 서랍 속에는 지성의 쓰레기만 쌓인다.
철학도 실종되었고 문학도 실종되었다. 학술적 허영으로 장식된 모자를 뒤집어 쓰고,
날조된 모더니즘의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대문을 나서는 그대.
겨울이 끝나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콘크리트 담벼락 밑에는 지난 밤 살해당한 바람의 시체들이 유기되어 있다.

6.
바람은 정지해 있으면 이미 바람이 아니다.



      < 바람에 관한 명상 수첩 >    

                                                         / 이외수             
 
                                                       ... 藝盤예반 *.*              
 


Blowing in the Wind - Peter, Paul and Mary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과 수레' ♬  (0) 2025.05.22
'자서전' ♬  (0) 2025.05.15
'달몸살' ♬  (0) 2025.04.24
'호박꽃' ♬  (0) 2025.04.17
'가난하다는 것은' ♬  (0) 2025.04.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