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자축의 의미로 또 오프닝밴드를 만들었어. 이번엔 그 사람이 키보드를 맡았지. 기억이 아련하지만, 변두리 어느 아파트에 연습실이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의 집이었는데 방안에 악기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시간당 얼마.. 그렇게 해서 서너번 연습을 하러갔었어. 선택한 곡은 'Sea of Heartbreak' .. 왜 그때, 이 노래를 선택했던지는 알수가 없어. '항구의 불빛은 더 이상 나를 비추지 않고 난 바다위를 표류하는 난파선 같아. 당신과 따뜻한 포옹.. 행복했던 멋진 기억들.. 어쩌다 우리 헤어졌는지 알 수 없어. 지금은 눈물 속 상심의 바닷가에..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파..'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진땀 가득한 얼굴로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나. 입술을 꼭 오무린채 악보를 보며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그 사람. 앨범에 꽂혀있는 사진 속의 모습이다. "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 정말.. 이 노랫말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
평소 TV는 거의 안 보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누리는 호사중에, 감정대입을 통한 희노애락만한게 있을까. 더욱이 사랑모드에 관한 한, 드라마.. 리얼 버라이어티는 소시민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다. 특히, 가상의 결혼.. 가상이라는 대못같은 전제가 있음에도 두 사람이 전개하는 엄연한 드라마에 가슴이 동하기도 한다. 별로였던 스타가 점점 급호감으로 다가오고, 브라운관에 비치는 그들의 일상이 어느덧 내 삶처럼 치환되기도 해. 거기다.. 주인공이 그 사람을 쏙 빼닮기라도 했다치면, 그건 뭐.. 일상의 굴레에서 해탈(?)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되지, 물론 방송이 끝나면 유리구두를 벗어야 하지만 말야. 어느 중견PD의 얘기처럼, '드라마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걸 실현하는 것' 이라는데 그렇게라도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다는게 어디야. 오늘도 브라운관에는 수많은 Dream Lover 들이..
학습효과도 청각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듯, 함께 했던 그 어떤 공간, 같이 나눴던 그 멜로디는 일생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기억을 부화하고 있어. 특히, 제각각 사연을 담은 그 많은 노래들은, 기억의 울타리가 되어 음악이 양식인 나를 가두고 있다. 노래제목을 엮어 편지를 쓰고, 노랫말로 수많은 마음을 전했던 그 시간들.. 그 노래들이 흐르는 한, 난 언제까지나 Love Story 의 주인공.. 끝나지 않은 사랑이야기.. ... 藝盤예반 *.*
하숙집에서 캠퍼스 본관까지는 오솔길을 지나 5분이 채 안걸려. 구불구불 흙길에 학교에서 보도블럭을 징검다리처럼 놔둬서, 하나씩 밟고 가면 묘한 맛이 있었다. 아침 이슬에 햇빛이 짠한 어느 아침, 가방을 걸쳐매고 숲길을 나선다. 오늘은 학생식당에서 그사람이랑 아침을 먹기로 했지. 저만치 앞걸음에 몇몇 학생이.. 앞에는 옆집에 하숙하는 여학생. 근데, 저기 앞쪽에서 뭔가 실랑이를 하는 거 같아. 앞 쪽의 여학생도 살짝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를 피하고. 다가오는 어떤 남정네.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흐트러진 매무새, 어~ 도서관 고시파 구역에서 가끔 보던 사람인데..? 불쑥 가로막으며 한마디 한다, 강한 제스처와 함께 '이봐요, 나랑 얘기 좀 할래요?' 귀한(?) 서울 억양을 듣는 순간, 느껴지는 알코올냄새. 동시에, 내 팔을 잡으려는듯 손을 뻗는걸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피해간다. 뒤에서 멀어지듯 외치는 소리. '야, 이 자식들아~ 내 얘기를 들으면 세상을 얻는거야~~'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어. 아침햇살 속 숲속.. 야생마의 울음같은 한 남자의 외침. 등 뒤에서 느껴지던 순간의 전율.. 적당한 공포. 나중에 안 얘기지만, 여러번 고시에 도전하고 있던 그 복학생 아내가 떠났다는군. 그 후로도 도서관에서 몇번 보긴 했던 그 남자,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 속의 주인공이다.
... 藝盤 *.*
Joseph McManners boy soprano) sings Morning has broken
어느 추운 때.. 기말고사 준비에 다들 피곤할 즈음, 하숙방에서 이벤트를 했다. 삼계탕 파티를 하기로 한거지. 연탄불 위 커다란 찜통이 오늘은 닭들의 목욕탕이 된다. 꽤 큼직한 닭을 다섯마리나 준비했어. 4인방 중 오늘은 그 사람이랑 단짝 둘만 동참해서 남정네들이랑 어울리는데.. 그 사람이 준비해 온 바늘과 실로, 각종 재료를 잉태한 배부른 닭을 꿰맨다.. 꽤 자연스럽게 하네.. 난 그 사람의 손놀림을 물끄러미 지켜봤어.
좁은 하숙방에 옹기종기 앉아 그럴듯한 냄새를 기다리는데, 책도 뒤적이다가.. 이런저런 얘기.. 기타도 치다가 문득.. 주변의 사물들을 하나씩 희뿌옇게 지워봤어. 말 많은 저 녀석도 지우고, 은근히 그 사람을 좋아하는 저 놈도.. 책상도 지우고.. 꼬질한 옷장도.. 벽에 기대 다리를 뻗은 채 책을 보고 있는 그 사람만 남는다. 뒤로 묶었지만 약간 헝크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향한 커다란 눈망울.. 더운 방바닥 땜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 살짝 갈라진 턱라인까지.. 이제 잠시 후 둘이서 만찬을 하는건가..? 이렇게.. 지금처럼만.. 언제나..그랬으면..
We May Never Love Like This Again ~♬♪ 영화 '타워링'을 수놓던 그 노래, 우리.. 다신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거야.. 영원한 사랑이라는거지. 일생을 살면서 이런 사랑 얼마나들 해볼까. 결혼을 한 두 사람에게는 이런 사랑이 유효할까. 꼭 그런건 아닌거 같아, 한지붕 두 가족.. 땅콩껍질 속의 연가.. 문서상의 부부.. 생물학적 연인..에 불과한 정서적으로 적과의 동침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내 마음의 대상에게 한결같은 영적 에너지를 쏟는다는건 참 어려운 일이지. 미움이든 사랑이든.. 영원처럼 항상성을 갖는.. 그 에너지의 대상을 찾는건, 또 스스로가 그 대상이 되는 건.. 다시 태어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워.
... 藝盤 *.*
Maureen McGovern - We May Never Love Like This Again
시험기간이면 세상에 그런 전쟁이 없어.. 압량벌에 사는 지리적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중앙도서관에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고시파 터줏대감들을 비롯한 압량벌 하숙파들은 새벽2시부터 줄을 서는거야. 그런데 난, 시내에서 들어오는 그 사람을 위해 두개의 자리를 잡아야 하니. 일단, 도서관 문닫는 11시30분에 하숙방에 들어와서는 얼른 라면을 한 그릇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옷을 입은 채로 새벽 1시50분까지 쪽잠을 청하지. 새벽 1시50분.. 이 방, 저 방에서 요란한 자명종 소리, 본능적으로 일어나면 곧 이어.. 깜깜한 바깥 골목을 흔드는 달음박질 소리들. 양 옆구리에 두 개의 방석, 그리고 양 손에 책보따리를 들고는 튀어 나간다. 별빛 아래 시골 밤길을 5분 남짓 달려 중도에 도착하면, 벌써 수십대의 자전거와 군상들이 배급줄처럼 줄지어 있다. 그렇게 정신을 일깨우고 서 있노라면, 투덜거리며 수위아저씨가 출입문을 열지.. 2시30분. 후다닥 들이닥쳐 적당한 구석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자리잡기에도 전략이 있어. 나란히 자리를 잡지 않어..비껴서 볼 수 있는 정도로 떨어져서 두 자리를. 그리고는 자리 셋팅(?)에 들어간다. 그럴듯하게 책과 사전.. 연습장 공책 등을 펼쳐놓지. 여기서 또 팁 하나, 펼쳐놓은 페이지의 내용 일부를 연습장에 적어 놓는다. 그리고, 연필 깎은 껍질도 좀 흩어 놓고 반쯤 남은 우유팩도 하나, 구겨놓은 휴지도 몇 장.. 그리고는, 30분 정도에 한 번씩 자리를 번갈아 앉아 준다. 그렇게 몽유병 환자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몇시간을 보내고, 창밖 저만치 여명이 느껴질 무렵이면 내 몸이 발악을 한다. 얼마 후.. 시내에서 꽤 무리해서 일찍 등교한 그 사람. '고마워요~' .. 토끼눈으로 그 사람이랑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바로 자리에 엎어진다. 뿌듯함 속에 꿈나라로..
가끔.. 그 사람 혼자 도서관에 남아 있는 날이면, 집에 가는 길에 동행을 했다. 사실, 시내에서 놀다 헤어질 때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것도 그렇지만 압량벌에서 따라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건 보통일은 아냐. 그냥 내가 좋으니까 그러지. 거의 두시간이 소요되는 밤의 데이트. 절반은 그 사람과 함께, 돌아오는 절반은 혼자서 즐거운 상상의 여정. 밤늦은 시골길 조심하라고 그 사람이 손 흔든다, '괜찮아.. 이렇게 같이 있는것 만으로 magic 이다..'
그 해 학과 축제는 좀 특별하게 준비를 했어. 우선 초청장, 팜플렛 부터 뭔가 다르게 하느라 3일밤을 꼬박 샜었지. 그렇게 디자인한 초청팜플렛. 벤젠고리 모양의 6각형, 그걸 펼치면 아래 위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8개의 다이아몬드. 멋진 아이디어긴 했지만 인쇄소에서 받아 온 원판을 일일이 모서리 사각형을 자르고 접느라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티는 과건물 옥상을 선택했다, 파격적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지. 오랜 세월 흙먼지가 쌓여 다져진 바닥은 마치 쿠션좋은 카페트 같았고, 허리 높이로 둘러진 넓직한 옥상은 이웃 과건물의 외부조명이 곁들여져 완벽한 야외파티가 됐어.. 거기다.. 내친 김에 밴드를 급조해서 오프닝을 장식하기로 하고는 초청 밴드의 드러머만 빌려 후배녀석들이랑 구색을 맞춰서 난 기타를 맡는다. 그 당시 최고의 신곡이던 '연' .. 어둠이 막 깃드는 시간, 행사 시작전 최종 예행연습을 하는데 기타와 오르간이 어우른 인트로를 막 시작하는 순간 그 사람이 옥상으로 들어왔어. 행사준비하던 학생회 임원들이랑 함께 지켜보는 그 사람. 보란 듯이 멋진 폼으로 연주했냐고? 연주모습을 처음보는 그 사람 앞에서 고개 푹 숙이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