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고등학교때, 1년에 몇 번씩 단체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새까만 교복행렬이 개미떼 같이 시내 번화가에 집결해서 1회 상영을 통째로 영화관을 빌려 관람했어. 많은 영화들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지만 특히 이 영화, '파멜라 빌로레시'란 여배우 이름이 지금도 생생한.. 근데 특별하게, 상큼한 여배우의 이미지에 마음이 설렌게 아니라 어린 마음에도 중후한 음악가역할의 리처드 존슨이 그렇게 멋지더라고. 영화가 끝나고 다들 나갈 때 화장실에 살짝 숨었다가 다음 회 상영때 서서 한번 더 보고 나왔던 기억이.. 훗날 그 사람에게도 가끔, 파멜라 빌로레시의 이미지를 느낀다고 하면서 주인공 남자처럼 나이들면 참 근사하겠다고 했더니 그 사람도 그런 이미지가 좋대. 지금의 난.. 아직 그 이미지에는 많이 먼 거 같고, 그사람은.. 어떻게 변했을까.
'... 바다에 오기 전 나는 생각했었다. 바다엘 가면 고백하리라. 파도 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사랑해요 하고 고백하리라. 사랑, 하고 마음 속에 넣어두면 아름답지만 사랑, 하고 입밖에 꺼내 놓으면 징그러운 단어, 어쩌면 고백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 이외수
온갖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이벤트가 일상화되고, 표현하는 어휘도 거의 예능수준인 요즘.. 마음을 전하는 고백이 그저 시청각적이기만 한거 같애. 실물화, 가시화되지 않은 고백.. 그 무형의 파동, 사랑의 에너지는 사실 꼭 언어의 힘이나 연출이 필요하진 않아.. '사랑하는데 말이 필요하면 벙어리는 어떻게 사랑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