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에는 밴드가 없어 어쩌다 '피닉스'란 문리대밴드에 섞이게 됐었다. 예전엔 '감초들'이라고 과밴드가 있었다더만, 공부에 지장있다고 교수진이 없애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남부정류장 근처 가정집 지하를 빌려 연습하곤 했는데, 음악적 기호나 정서가 전혀 맞지 않는 친구들이었지만 그냥 기타치는게 좋았어. 주로 과행사에 불려(?)가는게 주무대인 그 당시, 1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삼륜차에 용달비, 악기대여비.. 등등 빼면, 음식 대접받는게 남는 거였지.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이런저런 시험이 수시로 있는 과 특성상, 연습시간에 꼬박꼬박 갈 수도 없고 내일 시험인데 오늘 연주를 해야하는 일도 있다는거. 본행사 진행하는 동안 무대 악기 뒤 병풍 안쪽에 쪼그려 앉아 다음날 시험칠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캠퍼스랑 시내 곳곳에 붙어있는 공연포스터를 봤는지 그 사람이 한번은 걱정스레 얘기했네, 그만하라고. 근데 그만두지 않아도 됐어, 내가 잘렸으니까. 도저히 연습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지. 그래도 멋진 시간이었어, 상처뿐인 외도였지만. 방학 후 연습실에 갔더니 내 기타는 팔아먹었더군, 첫 장학금받아 샀던 애마였는데. 그리고.. 그 학기에, 한 과목 과락했어.
몇몇이 어울려 연못에 다녀오는 길에 불쑥, 그 사람이 하숙방에 들르게 됐어. 단짝이랑 셋이 들렀는데 이런 낭패가.. 남정네 하숙방의 꼬락서니야 뻔한 그림이라, 이건 뭐 청소할 여유도 없고.. 그것도 첫 방문인데, 담배를 안피우는터라 그나마 다행이다. 대접할 거라곤 분말차와 음악들. 사실 내게 있어 최고의 대접은 '특별한' 음악들이지만 그건 나 혼자 생각이고. 몇 십분간 좌불안석 손님맞이가 끝나고 여전사들이 일어서는데, 방문을 나서면서 그녀가 한마디 한다.. '저 여자, 좋아하나 봐요..?' 방문에 큼직하게 붙어있던 브로마이드, <Physical> 로 날리고 있던 Olivia Newton John 그 날 이후.. ONJ 는 서랍 속으로.
흐린 날.. 강의실이 무겁다.. 매듭 아이, 그 녀석이 몹쓸 짓을 했단다. 하늘로 간 매듭.. 모질기도 하다. 자식.. 실~컷 울고 다 털어버리지, 그깟 슬픔을 못 이겨서 지 삶을 스스로 매듭지을까.. 사랑이 배신했다고 자기 스스로를 배신할 수가.. 이제.. 나한테 빌려간 책은 어떻게 줄래.. 책상 앞에 걸려있는 매듭은 어떡할까.. 매듭에 달려있는 금속처럼.. 내 마음이 싸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