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리라는 걸 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일까지 유쾌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리 술독에 빠져 보아도 목구멍의 쓰디쓴 맛을 씻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원인도 없이 왔다 가는 슬픔. 맘속은 텅 빈 허공입니다. 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건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매끈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외톨이가 되고 싶습니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과 섞이고 싶습니다. 별안간 손을 올려 내 코를 꼬집어 봅니다. 거울을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이게 내 얼굴이야? 하늘의 별들이 돌연 주근깨로 보입니다. 어디론가 가 버리고 싶고 숨고 싶고 파묻히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싶고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아무 때나 왔다가 아무 때나 사라지는 슬픔. 그러면서 영혼은 차차로 순치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 『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 』 (갑자기 사는 일이 허망해졌을 때) / 에릭 케스트너 ...藝盤예반 *.*
약속을 어기는 것도 그럴 맛이 있군요 의무를 다하기란 쓰라린 일이죠 뭐니 해도 인간은 마음에도 없는 약속은 못하는 것이니까 당신은 또 마법을 쓰시고 겨우 안정되려는 이 나를 달콤한 사랑의 조각배에 태워 위험을 새롭게 하고 갑절로 만드시는군요 어째서 이제 그런 꾸밈을 보이나요 솔직하세요, 내 눈을 피할것 없죠. 어차피 난 알고 있죠 자 풀어드리겠어요, 당신의 약속을 저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죠. 이제부터는 무엇하나 거리낄 것 없읍니다. 단지 그대의 벗이 그대의 손을 떠나 조용히 고독으로 돌아가는 걸 용서해주세요 < 이별 > / 괴테 ...藝盤예반 *.*
당신의 편지에, 나에게 꼬집혀서 멍이 들었다고 했었지. 나는 사랑한 나머지 꼬집은 거요. 이곳에 있는 사이에 애정이 점점 강해지기만 하니, 다음에도 사랑이 식을 때까지 꼬집어주겠소. 약속하겠소, 나의 천사. 당신은 편지에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상상하고 있어요'라고 썼지. 나의 귀여운 안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당신에 관한 일이오. 끊임없이 당신만을 생각하오. 마음속으로 쉴새없이 당신에게 키스하고 있오.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나를 황홀하게 하는그것'에게도 키스하오. 아아 그 키스, 그 키스의 방법은! 안나, 하품(下品)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도리가 없지 않소. 나란 사람이 그런 남자이니, 그것을 나무라지 마시오. 당신 자신은......당신은 나의 빛이요. 당신이 그러한 것을,최후의 미묘한 점까지 이해해 주는 것이, 나의 모든 희망이요. 나의 천사, 안녕(아아,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소) 당신의 발가락과 그리고 입술과 그리고......에 키스하오.
도서관을 나와 본관옆 오솔길을 지나 이방인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하숙방 연탄불은 안전할까..? 요즘이야 그런 걱정없지만, 그땐 옆방 녀석들이 밑불을 슬쩍 바꿔치기 하곤 했다. 오솔길로 가다보면 몇 기의 묘지가 있는데 권세있는 집안인지, 보기에도 꾸며진 석물들이 대단하다. 야심한 시간이라 푸릇푸릇 인불도 날아다니지만 가끔씩 사람 혼을 빼는 건 교내 청소부 아줌마. 징검다리처럼 보도블럭 조각을 하나씩 밟으며 가다보면 인기척은 없는데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랜턴도 안 갖고 왔는데 으시시하다. 눈을 부릅뜨고 앞을 보며 가다보면 훤한 달빛아래서 짙은 작업복에 보자기까지 머리에 쓰고, 갈고리로 낙엽을 긁어모으는 청소아줌마. 가슴철렁, 진땀 쫙.. 짧은 순간 욕이 절로 나오지, 젠장, 하필 이 야밤에.. 한숨 돌리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빛아래 그사람을 태운 버스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재물을 소유한 사람에게 그것을 분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또, 소유하는 사람들이 재물을 버리기 아까와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기를 기다린다는 것도 너무도 몽상이 지나칩니다. 나의 경우, 독점적인 소유가 참으로 어려운 것으로 되었고, 나의 행복은 주는 것으로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죽음도 나의 손에서 대단한 것을 뺏지는 못할 것입니다. 죽음이 가장 많이 내게서 빼앗는 것은 붙들어 둘 수도 없는 재보, 자연적 재보, 즉 만인에 공통한 전유(專有)에 적합하지 않는 재보 뿐일 것입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재보라면 이때껏 만끽했읍니다. 그밖의 재보에 관해서는, 나는 산해진미보다는 시골집의식사를, 담을 둘러친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공원을, 진기한 한정판 서적보다는 걱정없이 산보에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서적을 사랑합니다. 만약 또 어떤 예술품을 감상하려면 혼자서가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면, 그 작품이 아름다우면 아룸다울수록 나의 비애는 보다 많고, 기쁨은 사라질 것이리라. 나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늘리는 데에 있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만인의 행복을 필요로 합니다. < 나의 행복은 ...> / 지이드 ...藝盤예반 *.*
광주가 붉게 물들던 그 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던 캠퍼스, 그 날도 도서관에서 공상에 떠다니는데, 갑자기 바깥 분위기가 심상찮더니 모두들 우르르. 캠퍼스 입구에서부터 최루가스의 집중포화를 뚫고, 논둑을 달리고 도로를 건너 거대한 행렬로 나아간다. 고산을 지날 즈음 엄청난 병력에 도로가 차단되자 양쪽 산능선을 넘어 개미떼같이 흩어지고, 하늘에서는 헬기로 경고방송을 한다. 그렇게 간편한 도서관 복장에 슬리퍼를 신고 울컥 나선 걸음으로 오전에 압량벌을 떠나, 걷고 뛰고 또 걸어서 오후 늦게 도착한 대명동 캠퍼스. 학교에서 제공한 빵과 우유로 허기를 때우고는 학교버스로 다시 압량벌로. 정말 멀고 험한 길이다.. 자유를 향한 길도, 그사람을 향한 내 마음의 여정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특별한 약속이 있으리란 것을 나는 알았어요. 그리고 그건 따스함과 친근함과 사랑과 진실과 존경의 약속이었지요. 우리는 수많은 사연들을 거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왔어요. 그래서 나는 자랑스럽답니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우리의 약속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강해지고 충실해졌다는 것이. < 사랑과 진실 > / 레이 엘렌 디티 ...藝盤예반 *.*
도서관 난간에 나서면 예술대를 마주보게 되는데 호른 전공하는 기악과 남정네, 얘가 지네 연습실 베란다에서 꼭 도서관쪽을 보고 입을 푼다.
햇빛에 반짝이는 관악기가 풀어내는 품위. 레퍼토리는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b major 3악장. 도서관 붙박이 터줏대감인 고시생 대표들이랑 시끄럽다고 몇번을 실랑이 했지만, 자유로운 소리의 넘나듬을 어찌 할 수도 없고. 사실.. 도서관에서 졸다 가끔씩 운치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 사람이 문득 얘기하지, ' 왠 장학퀴즈? '
... 藝盤 *.*
Haydn Concerto In E-Flat Major For Trumpet And Orchestra, H. Vlle: No.l: lll. Allegro-Alison Bals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