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보라색을 좋아하게 됐다. 열정의 빨간색과 냉철한 이성의 파란색이 적절히 어우를 때 나타나는.. 어느 화사한 날 보라빛 니트를 입고 온 그 사람.. 한쪽 어깨에서 시작해 몸을 휘감은 금박의 peacock 문양. 뭐랄까.. 요즘의 그 어떤 엄친녀도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렇게.. 내 영혼은 보라빛 바다에 빠진다..
부처님, 우리들 사랑의 몸무겔 달아 주셔요 우리들은 늘 싸움이어요 서로의 가슴 속에 서로를 그 누가 더더욱 값나고 빛나게 지니었는가를 즈믄날의 길고 긴 싸움으로 있어요 부처님, 아무도 할 수 없어요 우리들 사랑의 몸무게 그건 당신의 절대의 저울만이 다실 수 있답니다 오, 허지만 두려워요 우리들을요 부처님 차라리 한뙈기 콩밭과 같은 것으로 바꾸시어서 實物의 열매를 맺게 하시든지 보게 하시든지 하셔요 당신이 던지시는 세상을 향한 꼭 한번만의 投網 거기 햇살 속에 튀는 한 마리 싱싱한 銀魚로 있게 하시든지 보게 하시든지 하셔요... ...藝盤예반 *.*
추억이라는 열차에 동전을 넣는다 좌석표에는 몇 가지 이름이 있다 아픔, 미련, 향수, 고독, 가난, 열정, 웃음 추억이라는 이 열차에는 그래서 일등석이 없다 모든 좌석들이 희미하게 열려진 풍경들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흔들거리며 추억의 깊이까지 저려온다 어두운 터널을 두 개를 지나서야 승무원이 추억을 검표하러 걸어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멈추어야 할 정류장을 지나 너무 멀리까지 추억을 보고 오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추억은 가난했다 매일 하루하루가 그렇게 세상에 빚을 졌다 그런 나의 여윈 추억이 검표원에게 건네진다 그는 나에게 미련이라는 좌석으로 옮겨 앉으라고 말한다 왜 추억은 향기가, 웃음이, 침묵이 더욱 간절했던 것일까? 깊은 잠이 온다 추억을 사랑했던 지친 피곤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제 막 오늘이 어제라는 추억의 입구를 지나며, 아주 긴 눈물이 흐르고 있다 멈추어야 할 정류장을 벌써 두 정거장이나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되 결코 사랑의 멍에를 지우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각자의 잔을 채워 주되 결코 같은 잔으로 마시지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허용하십시오. 마치 기타의 줄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악을 지어 내듯이 당신의 마음을 몽땅 바쳐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결코 서로를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는 마십시오." ...藝盤예반 *.*
이별치고 슬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마는 그중에도 제일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갖는 이별입니다. 거기에는 마음의 아픔과 눈물이 따릅니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情)으로 이어져 있는 바라 그렇기도 하지만 이별의 마당을 당해서 그 정이 유독 솟구치는 데에 그런 것일까 합니다. 자기의 삶의 전부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짧은 동안이건 긴 동안이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그 아쉬움은 간절하기가 눈물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런 때는 사람이 약하다고만 할 것입니까. 그저 약하다고만 하기에는 세상물정 자체가 야속하고 무정한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가령 가을철 코스모스가 만발한 시골의 간이역(簡易驛)을 떠올려 보는 것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 때의 그 가슴 아픔은 그 코스모스의 낱낱의 꽃잎들이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또 그 흔들리는 몸짓이 사랑하는 사람의 애타는 몸짓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 쌀쌀한 날씨가 가슴에 싸늘한 섭섭함을 부어주고, 높은 하늘은 어쩔 수 없는 이별처럼 불가항력의 그것으로 느껴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나 그뿐입니까, 땅에서는 세상의 바로 그것인 차가운 정적(靜寂)이 흐르고, 기적 소리는 말할 수 없는 이별의 말처럼 목이 멜 것이 아닌가요. 아니, 사실은 이런 것이 다 이별의 애감(哀感)의 총화(總和)가 되어 세상에 가득 차고 있을 것이 아닌가요. 이 말을 달리 표현해 본다면, 모든 풍경이나 사물은 이별의 슬픈 눈에 그 조역(助役)으로서 이별의 슬픔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위의 풍경이나 사물까지도 슬픔으로 동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별은 그 슬픔이 주관적(主觀的)으로 강합니다. 그래서 그 주관의 힘으로 주위의 풍경이나 사물을 슬픔으로 끌어 오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대를 보내고 홀로 돌아와 사립문 닫노니 해가 기운다 이별의 슬픔을 읊은 왕유(王維)의 시에도 그러한 주관의 강한 힘이 보입니다. 안 그래도 해는 저무는 것이언만 이별을 즈음하여 <사립문 닫노니><해가 기운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해가 기운다]는 사실이 그냥 어느 날과 같이 단순히 기우는 것이 아니라, 이별의 슬픔 그 자체가 되어 그의 눈에 비친 겁니다. 해가 기운다는 그 범용(凡庸)한 사실이 이별의 아픔을 당한 마음 위에서는 슬픔으로 밖에는 읽어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립문도 어느 날엔 닫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어느 날과 똑같이 닫는 그 사립문은 아닌 겁니다. 이제 그리운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그리운 사람 한 사람하고만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제반사(諸般事)와도 이별을 고하는 것입니다ㅡ그런 심정으로 사립문을 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한 슬픔이 사실은 [사립문]을 닫고 있는 것이고, 또한 그를 도와 [해]가 기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만가지 정감(情感)을 슬픔이라는 강한 일색(一色)으로 채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가 기운] 다음에는 적막한 어둠이 옵니다. 그것이 이별의 빛깔인지 모릅니다.
캠퍼스의 아침햇살과 함께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그 사람.. 오늘도 화사한 웃음으로 나의 하루에 들어온 사람.. 언제나처럼 또 몇 걸음 뒤를 따라간다..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지나치며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여기.. 지금 이곳이 바로 천국.. '그대.. 천국에 온 걸 환영해요' .. 藝盤예반*.*
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1819~1896) Clara Wieck, ca 1840, drawing by Johann Heinrich Schmann (Robert-Schmann-Hans, Zwickau)
♤ 아내 크라라가 슈만에게 ♤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은 어찌해서 그렇게 평범한 '예스'라는 말 만을 원하시나요. 저의 마음은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사랑으로 가득차서, 당신이 원하시는 말에 대해 이미 분명히 제 뜻을 표명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저는 정말로 슬퍼집니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 말하라고 하신다면, 저의 가슴은 항상 영원한 '예스'를 속삭이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진정 저는 가슴속의 번민이나 쏟아지는 눈물같은 것을 지금 무리해서 겉으로 들어 내지는 않겠읍니다. 그렇게 무리를 하지 않고도..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저도 당신을 위해서, 확실히 '예스'라고 회답을 합니다. ..저의 젊은 마음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것을 증명하면서..
- 당신의 크라라가 ...藝盤예반*.*
Robert und Clara Schumann, 1847, Lithography by Eduard Kaiser, Vienna 1847 Isata Kanneh-Mason | Clara Schumann's Scherzo No.2 in C Mi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