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 남자친구는 트럼페터입니다. 조금씩 폐허가 된 생활이 놓여 있지만 그쪽 벌판은 잘 보지 않습니다. 저 온기를 서로 부비는 풀잎들에게서 이 마음 끝까지 뻗은 길을 소리들이 가고 있습니다. 삭은 내의를 걸친 채 그는 트럼펫 부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누구든지 꿈을 선택하고 꿈으로만 자신을 꾸미는 일. 숲속의 나무들이 그런 일 속에는 잔뜩 묻혀 있습니다. 그가 부는 트럼펫 소리는 하늘에서 먼저 가 있던 소리를 만나 어깨를 감싸고 같이 걷습니다. 북만드는 나무라도 일찍 찍으러 간 모양입니다. 내 남자 친구는.
1. In the Dead of Night (Jobson/Wetton) - 5:38 2. By the Light of Day (Jobson/Wetton) - 5:32 3. Presto Vivace and Reprise (Jobson/Wetton) - 2:58 4. Thirty Years (Bruford/Jobson/Wetton) - 8:09 5. Alaska (Jobson) - 4:45 6. Time to Kill (Bruford/Jobson/Wetton) - 4:55 7. Nevermore (Holdsworth/Jobson/Wetton) - 8:09 8. Mental Medication (Bruford/Holdsworth/Jobson) - 7:31
Eddie Jobson - Violin, Keyboards, Electronic Sounds, Producer, Violin (Electric), Electronics Bill Bruford - Percussion, Drums, Producer John Wetton - Bass, Guitar, Vocals, Producer Allan Holdsworth - Guitar, Producer
강의실에서.. 학교식당에서도.. 늘 여럿이 어울려 다니지만, 제대로 눈길 한번 마주치질 않는다.. 다른 녀석들과는 웃으며 얘기거리도 많구만.. 가끔씩 훔쳐보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냐.. 혹 .. 그 사람도 나처럼 몰래 훔쳐보는건지.. 아까 물을 마시며 언뜻 보는거 같기도 했지..? ........ 불쑥 일어나 손흔들며 스쿨버스에 오르는 그 사람.. 내일 또 내일 !
<당신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이 말은 어느 뛰어난 설교가(說敎家)의 저서에서 읽은 한 귀절이지만, 반드시 옳게 말했다곤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위로를 받고 있으며 때로 그 위로는 흡족한 수량(水量)으로 도도히 흐르는 큰 강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기쁘다는 이런 마음이 불시에 백만의 등불을 켜고 세찬 전율(戰慄)의 희열로 부풀어 오르며, 훈훈한 수증기가 무변(無邊)의 안개같이 또는 봄 아지랭이 같이 서려 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땐 소중한 사람이 우리를 버리고 멀리 가 버린 듯 싶기도 했었으며, 기실 그 때문에 비탄의 수렁으로 처참히 굴러 떨어지기도 했지만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 전에 종내 다시 돌아 와 주었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값어치 있는 위로요 축복이겠습니까.
받아 들이는 일이 하나의 용단이라면 돌아 오는 일은 그 이상의 용단일 줄 압니다. 자존심을 꺾고 그 사람을 다시 맞는 일에 비해, 자존심을 포기하고 탕자(蕩子)의 귀향(歸鄕)을 수긍하는 어떤 겸허한 행동 앞에 더욱 영접을 후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 오라 다리위에 그 여자 만약 돌아 온다면 나는 말하리라 아아 기쁘다라고
이 한 절의 시구(詩句)는 생각 날 적마다 항상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내게도 떠나 가버린 사람이 있었지만 끝내 잊을 길이 없어 다시 돌아 오게 했습니다. 진실로 내 영혼에의 통로 그 어디쯤까지 돌아 와 주었는지 익히 알 수가 없으나마, 내 마음은 기껍고 고맙고 마치도 녹슨 은 촉대를 환히 닦고 기름한 새 초를 갈아 꽂는 것만 같았습니다.
주저없이 불을 댕겨 붙였습니다. 만약에 또 그 사람이 나를 떠나 가게 되더라도 내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다시 돌아와 준다면 거듭 몇번이라도 위와 같은 의미가 생겨 날 줄로 나는 믿으며, 더구나 그가 확신에 넘쳐서 내 이름을 불러 주면 참았던 눈물의 둑이 터지고 부끄럽지도 않으며, 잃어버란 시간을 타산하는 일도 없이 오히려 동녀(童女)처럼 호곡한들 무어 나쁘겠습니까?
계산하는 총명은 때로 진실을 요약하고 귀결짓는 총명과 별개의 것이던 일을 나는 여러번 보아 왔다고 증언하고 싶습니다. 부유(富裕)라는 말의 그 뜻조차 분량으로 많이 가짐을 일컫지 아니하고 정녕 요긴한 걸 놓치잖는 그런 이치의 것일 줄로 여겨지거니, 하물며 여인의 한평생 무류(無類)의 빈객(賓客)이라 부를 그 한사람을 잃는대서야 차마 비탄과오욕(汚辱)을 어찌나 견디겠습니까. 떠나가 버린 남편이 있으면 여인이 기어코 데려 와야 하겠습니다. 자잘한 수치(數値)에서야 억울하고 분하고 아쉬웠다 해도 차라리 얼마든지 밑져 주고서, 가장 큰 단위의 묵직한 주산알 하나에선 끝내 이를 확보하는 궁극의 합리만을 꼭 성취해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격정과 비탄을 무섭게 참으며 너그러우며 마침내 뜻에 달하고 귀중한 것을 아니 놓치는 그런 슬기로운 처신(處身)을 이루어야 합니다. 절망은 죽음이 와 버리는 일 그것 뿐입니다. 만약에 죽음이 와서 귀중한 누구를 영영 빼앗아 갔다거나 하면, 그래서 맨주먹으로 바위를 부수려 하듯이 쾅쾅 운명의 돌문을 피흘리며 두드릴 그때에만 돌문 그 너머서 절망의 신음이 울려 옴을 어쩔 수 없다고나 할 것인지,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우리 곁에 있고 생명이 남아 있어 모든 행위와 의지(意志)의 기반(基盤)이 되어 주고 있을 적에야 섣불리 무엇 때문에 절망 하겠습니까? 심지어는 죽음이 가로 놓여 있을 때라 해도 그 딱딱한 사구(砂丘)에 한가닥 청신한 샘물을 뿜어 올리게 할 그런 구원(救援)과 위로를 가르치는 종교도 있는 것을......
위로 있음을 긍정하고 손쉽게 비애(悲哀)를 사귀지 말며 생활을 옳게 갈(耕)고 마침내 큰 보람을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 선택한 이를 결코 잃지 않는 여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We're Off You Know {John Woloschuk} (4:02) 2. Madman {Dee Long} (2:39) 3. Around The Universe In Eighty Days {Dee Long} (4:59) 4. Long Live Politzania {John Woloschuk} (9:11) 5. The Loneliest Of Creatures {John Woloschuk} (3:44) 6. Prelude {John Woloschuk} (5:45) 7. So Said The Lighthouse Keeper {John Woloschuk} (5:51) 8. Hope {John Woloschuk} (4:44)
Total playing time 40:57
John Woloschuk - vocals, bass, guitar, keyboards Terry Draper - vocals, drums, percussion, guitar, keyboards Dee Long - vocals, guitar, synthesizers with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Guido Basso - jazz trumpet on "We're Off You Know"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만든 대리석상을 바라보며 매양 침울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의 추구를 그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한결 더 아름다운 것... 이를 갈망하는 건 훌륭한 목적이 될 수 있으며, 더 높고 더 오래가는 아름다움을 찾아 내려 하는 손은 그만치 더 힘세고 근면하고 또 세밀하지 않으면 안될 줄 압니다. 믿어 보기도 전에 실망하고 가꾸기도 전에 낙심하며 주어 보지도 않고 지레 빼았아 버리는 일과는 반대로, 주고 더 주며 믿고 또 더욱 믿는 끈기와 침착함과 한없이도 꿈꾸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아무 것도 찾아 내기 어렵습니다.
위에서 말한 미켈란젤로가 하루는 성당을 세우는 공사장에 나가 보았습니다. 쓸모가 없어 내버린 몇 개의 돌이 아무렇게나 내굴려 있는 데에서 그는 거의 한나절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해도 다 저물었을 무렵 그는 결심을 하고 공사장 감독에게 버려진 돌 한 덩어리를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시오. 한데 대관절 이 못생긴 돌을 무엇에 쓰렵니까?"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고요히 확신에 넘쳐 대답했습니다. "한 사나이 때문이요. 이 돌 속에 갇혀 있는 한 남자를 풀어 주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구료." 그리하여 미켈란젤로는 그 돌을 쪼아 불멸의 소상(塑像)하나를 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시들리는 것에 비해 보존하는 능력이 더 값어치 있듯이, 보존에만 그치지 않고 더욱 허공에서 불러 내는 창조의 힘이 있다면 이 오죽이나 큰 보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지혜 있는 이는 능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봅니다. 이미 오늘날의 과학이 물에서 전기를 일구어 내고 그 전기를 통해 바다 양켠의 사람들이 육성의 대화를 손쉽게 나누는 일인들 기실 놀랍거니와, 정신의 영토 그 안에서도 장엄히 불붙혀 올리는 응려한 교환(交歡)과 신심(信心)들의 분류(奔流)는 참으로 얼마나한 경악(驚愕)이겠습니까. 아니 더 소박하고 느긋하게 훨씬 음성을 낮추듯이 가만가만 얘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사랑한다는 말 한번도 쓰지 않고 평생을 사랑하기만 하는 두메 산골의 의 좋은 부부나 신앙의 겉치례를 하지 않고도 신의 마음을 가장 흡사하게 본따 사는 사람들의 그 어여쁨 같은 것을...... 불후(不朽)의 충실(充實)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 참으로 한번 태어났던 생명을 몇번이라도 거듭 소생시키는 생명의 저력(底力), 실로 거기에서만 가능하리라 여겨 집니다. 뿌리를 갖지 못한 나무를 덧없게 보는 심리 그대로 정신의 저력을 전혀 못 가진 사람 역시 \ 연민의 대상일 뿐입니다. 연민의 내용인 모멸, 모멸의 이름 속의 그 엄청난 치욕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넓혀 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능력과 사랑을 무한히 부풀려 내려면 그 사람 자신은 가장 작고 겸손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도 말했던 것 같지만 육체는 벌거벗은 상태를 수치스러워하고 정신은 옷을 입었을때 부끄러워합니다. 벗은 정신 그리고 무구(無垢)한 영혼으로 있으면서 생명의 의미를 확대하고 또한 스스로를 위해선 검약하되 모쪼록 인색하지 않은 수급자(授給者)가 되고 싶습니다.
한 젊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 먹이는 시간마다 가장 깨끗하고 어여쁘게 단장을 한다는 얘기는 퍽도 아름다왔습니다. 성당 제탁(祭卓)위에 밤새도록 켜 두는 성체등(聖體燈)의 빛 둘레.......그처럼도 신성하고 환한 이야기라 여겨졌었습니다.
흔히 주되 누구에게 줍니까. 우리가 주지 않으면 그 그릇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부터 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밖에 어머니를 못 가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더욱 많이 주어야 합니다. 사생할에 연결되는 가족들에게 먼저 흠씬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말이 어쩌면 시야가 좁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나의 생각으론 우리 나라만큼 사생할을 등한히 하고 자기의 가족을 소홀히 여기는 나라가 없는 것만 같습니다. 아내에게 사랑을 표시한다는 풍속은 실없이 군자의 위엄을 깍아 내리는 줄 알았던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남편들 또한 어려서 아내를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별반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이 얼마나 삭막하고 불행한 교육이었습니까? 우리 연대(年代)에 와서나마 부부간의 애정은 물론 냉엄(冷嚴)만을 일삼지 않는 부정(父情), 그리고 더욱 훈훈한 모정에 감싸여 마음껏 단란한 가정 풍경을 이루어 살고 싶습니다. To be Continued.....
하숙집으로 시외전화가 힘들던 시절.. 강의 시작 전 밖으로 나를 부른다. 둘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던 터라 깜짝 놀랐는데.. 우리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연락이 안되서, 실례지만 얘기 좀 전해 달라 하더라고.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고 돌아서는 그 사람.. 세상에 .. 이게 왠일이야. 그 날 .. 내 머릿속은.. '오늘은 휴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