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 < 적멸 > / 강연호
― 음악과 빵, 우유와 술, 사랑과 꿈, 이 모두가 공짜이다. 서로 사랑하는 상대방끼리 죽도록 아린 포옹으로 생긴 상처는 샘이다. 그들은 날카롭게 칼날을 세워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다. 목숨을 건 만남이다. 불꽃을 튀기고 몸씨름을 하면서 밤을 세운다. 인간이 인간의 먹이감이다. 안다는 것은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꿈꾸는 것은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 정신이 모든 시에 불을 붙였다. 언어를 포용하고, 이미지를 포용했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괴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 이름 짓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고, 상상하는 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 그러면, 곡괭이를 집어들라. 이론화하라. 확실하게 하라. 대가를 치르고 월급을 받아라. 한가한 시간에는 배가 터지도록 풀을 뜯어라. 신문 지면은 넓고도 넓으니 말이다. 아니면 저녁마다 다탁 위에서 혀가 부르트도록 신물나게 정치를 논하라. 입을 다물거나 제스처만 보여라― 이나 저나 똑같은 것이지만. 어차피 너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불명예나 교수대밖에 출구가 없다. 네 꿈은 너무 야무진데, 강고한 철학이 없구나. < 어떤 시인 > / 옥타비오 파스 / 현중문 옮김
4월 13일 일생 동안 나는 썼지. 얼간이처럼, 나는 그 짓을 했어. 그렇게 되는 것도 또한 나쁘지 않아. 나는 결코 거드름 부리지 않았지. 일생 동안 쓰는 것, 그게 쓰는 것을 가리츠지. 그 렇다고 아무것도 면해지지는 않아. - 마르그리트 뒤라스 / 고종석 ...藝盤예반 *.*
길거리를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아주 작은 의미조차 없을 것이다하지만 언젠간 나를 아주 큰 의미로 받아들여 줄 누군가가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다언젠간 날 위해 꽃가게를 서성거리고 날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할 함께 미래를 꿈꿀 누군가가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다그가 바로 예전에 나를 쳐다보며 복잡한 길에서 자신을 부대끼게한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생각했을지라도...
「 언젠간 누군가가 」 /양재선 ※ Man is... 자기의 애인을 친구의 애인과 비교한다 ...藝盤예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