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무도 오래 낮은 것만을 노래하였다

어쩔 수 없는 키를 강제로, 혹은
자진하여 낮춰 제 발등만 내려보거나
한번 쓰러져 영영 일어설 줄 모르는
상심한 추억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왔다
허나 불가피한 선택의 나날들이었다
누구도 예외 없이 고개 수그려 합장하며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세월의 빗장 때문이었다
그러니 우선 마음내키는 대로 가보련다
머나먼 하교길에 들어선 아이들처럼
느릿느릿 황혼녘의 들판길을 가로질러보고
더러 하늘 깊숙이 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을
길동무삼아 해찰을 부리기도 하며
몹쓸 기억의 숙영지로부터 벗어나야겠다
눈비에 젖어 무거운 검은 외투만을 고집하며
몸부림칠수록 빠져드는 수렁만 찾아다녔으니
그저 무심히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둥글게 공기속으로 퍼져오는 향기뿐인
수수꽃다리의 향연도 편하게 맞이해야겠다
서로가 원치 않았던 밀애의 시간들,
그럼에도 정들어 쉬 뿌리칠 수 없는 독한
악연의 손길에 붙잡혀 이리저리 떠돌았거니
이제 바로 그 밑 모를 바닥에서 솟아오른
지상의 모든 것들을 찬양해야겠다
눈 들어 잠시 쉬어갈 때만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새들도 관대하게 지켜봐야겠다
여태 내부 수리중인 짓눌린 심연의 회랑일랑
차라리 쾅쾅 못박아 아예 닫아버리고
오직 꿈꾸는 일만을 반복하는 점성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는
예전의 한 물고기좌 소년으로 돌아가야겠다
행여 남이 볼까 두려울세라 불 안 켜진
음습한 마음의 골목길만 그토록 헤매었으니
그래야만 늘 행복하던 자들과 어개를 나란히하여
앞서간 연대와 겨우 동행하려니

  < 노래하는 나무 - 心經 26  
>
                                                 / 임동확      
 
                                                                                ... 藝盤예반 *.*              
 


First of May / Bee 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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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에 사과를
만지작 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기침소리와
쓴약같은 입술담배 연기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 사평역에서 > / 곽재구


               
                                                       ... 藝盤예반 *.*                          
                                                    

Jeremy Spencer Band - Trav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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