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와 나의 인연은 아주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옛날에, 너는 내가 천석꾼댁 마름살며 보리타작하고 있을 때 물동이 이고 지나가던 다홍치마 노랑저고리 새댁이었거나 소금가마 짊어지고 싸리눈 내리는 고개를 넘던 장돌뱅이였을 때 탁배기 한사발 선심쓰던 주막집 주모였는지도 모른다. 옛날에, 옛날에, 나는 니가 큰절에 탑돌이가던 달밝은 길목 허름한 초가집에서 밤새워 글을 쓴 세상을 읽던 선비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냥갔다 돌아오는 길에 너의 집앞을 지나다가 타는 가얏고 소리에 발걸음이 흐트러지던 사냥꾼이였거나 니가 별당 창가에 그린듯 아씨로 앉아 수를 놓다가 잠시 연못가에 흐드러진 수국너머 하늘을 내다볼 때 담장을 넘어 날아가던 하얀나비였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는 그렇게 무심히 스치고 지나치던 오랜 인연으로 지금 밖이 안보이는 지하철 창문에 나란히 서서 같은 진동에 몸을 떠며 같은 방향으로 가고있을지도 모른다. < 인연 > / 백봉기 ... 藝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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