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했던 제련공장의 용광로는 커다란 눈이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그러나 어떤 강렬한 설득력을 가진 깊이 모를 심연의 눈 저절로 몸이 사려졌다 저 붉은 눈은 내게서 무엇을 읽는 것일까 어젯밤의 긍정과 부정의 길항을 읽는 것일까 가끔씩 꿈꾸었던 막연한 기대를 아니면 온갖 생각들이 헝클어져 빚어내는 오늘의 백치를 읽는 것은 아닐까 저 용광로 앞에서 30년대의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들은 어떻게 용해되어 순도 높은 성분의 위안이 되었으며 밀도 높은 조직의 희망을 얻기 위해 60년대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뜨거운 제련의 날들을 견뎠을 것인가 삶이 간단히 요약되는 것이라면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희망과 위안이 내가 저 붉은 눈앞에서 모조리 읽히고 있는 환상과 갈등과 좌절과 백치인 오늘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귀결인 오늘은 나의 아들과 손자에게로 가는 시도인 것이다 나는 저 커다란 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오늘을 본다 저 쇠가 물이 되는 극단의 전이가 미래로 열린 뜨거운 시선이라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치욕과 분노와 배반과 반역과 그리고 그 와중의 어영부영까지도 외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어야 하리라 삼대가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어찌 꼭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마는 육중한 바위산 꼭대기 우뚝 솟은 굴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로 삶의 찌꺼기를 걸러주기를 바라던 마음만은 전통처럼 닮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 용광로 앞에서 > / 조기조 ... 藝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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