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아, 남겨진​ 기억을 모아 전철을 타고 강남역에 내려 5번 출
구로 나오렴 그러면 새로 들어선 외환은행 빌딩이 있고 뉴욕제과
가 있지 그 뒤 샛길로 걸어나오면 기억하겠지, 드높게 개인 하늘
아래​ 온갖 들꽃이 피고 과수원이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 흰구름을
읽는 곳

너 떠난 후 술집이 들어서고 호텔과 PC방까지 들어섰지만 네
가​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땐 미루나무 아래 냇물의 물
풀 사이를 오가는 치어稚魚를 따라 박 넝쿨과 호박 넝쿨이 우거진 마
을의 집들 사이를 걸어오렴 혹 다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면 벼가
팬 들판에 서서 이마에 밴 땀을 닦고는 소금쟁이의 노래에 잠시
귀라도 열어두렴

변해서 밀려나간 것들이 소리지르는 격정이 들리느냐, 다들 자
기 목숨이 있어 저토록 딱딱한 절망을 밖으로 발라내고 변한 것
들은 내 엽서 속의 멍든 글씨마냥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
다 애인아, 네 갈피를 붙들고 너를 그곳에 머물게 하는 네 설렘의
흔적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네가 떠난 후​ 내게 남겨진 저 새로 생
겨난 불빛들은 군단軍團처럼 과수원을 건너 들판을 건너 내 방의 창
틈까지 스민다 밤이면 번지던 개울물 소리도 덩달아 들떠네 떠
도는 사랑처럼 뒤척거린다

애인아, 네 있는 자리 향기 가신 그 자리 혹 슬픔은 슬픔대로
부글거릴라치면 평상에 앉아 깎아 먹던 과수원의 사과와 마당에
하늘거리던 봄날의 채송화를 기억하라 네 뿌리가 되어주던 뒷산
의 자작나무 숲에서 네 온다는 기별을 알리면 나 와이샤츠를 다
려 입고 마을 입구 느티나무 지나 들꽃 사이 자전거를 타고 너 맞
으러 가리라


            < 과수원 > / 박주택 
                                                                                           
               ... 藝盤예반 *.*



Don Percival - One More Kiss D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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