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
예순에서 다섯 모자란 나이에
간경화를 앓고 있는 아부지는
누가 보기에도 시한부 인생임에 틀림없는데
아직도 일 욕심엔 장정에 지지 않는다
아부지의 손길이 밭고랑을 스치면
모진 가뭄 속에서도 풋것들은
장정의 아랫도리로 온 마을을 달리고
아부지의 발길이 논두렁을 밟으면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모들의 행진
당신의 젊은 날처럼 눈에 부시다
밭둔덕 따라
지게 가득 노을을 지고 가는
아부지의 뒤켠에는
살아온 날의 금강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 아부지 > / 이재무 

                                         
       ... 藝盤예반 *.*



Tom Waits. Waltzing Mat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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