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바람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 방황해 보라.
3. 어디를 가도 바람은 그대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봄날 독약같은 사랑에 신열을 앓다가 산에 오르면, 소리없이 흩날리는 산벚꽃. 잠시 그대 곁에 머무르다 등성이를 넘어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여름날 사무치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바다로 가면, 몸살을 앓으며 일어서는 물보라. 한사코 그대를 뿌리치며 수평선으로 내달아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가을날 방황에 지친 그림자를 끌고 들판에 이르면, 스산하게 흔들리는 억새풀. 참담한 그대 가슴을 난도질하고 떠나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인다. 겨울 밤 불면으로 뒤척이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꿈결에도 몰아치는 북풍한설. 아직도 그대는 혼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4. 바람은 그대를 남겨둔 채 어디로 떠나가는 것일까. 바람을 따라 떠나간 이름들의 행방을 그대는 모르고 있다. 불면으로 뒤척이는 천리객창 그대도 허공을 떠도는 혼백이 되어 바람의 울음소리를 들어 보라.
5. 도시는 바람의 무덤이다. 이제는 아무도 서정시를 쓰지 않는다. 감성의 서랍 속에는 감성의 먼지만 쌓이고, 지성의 서랍 속에는 지성의 쓰레기만 쌓인다. 철학도 실종되었고 문학도 실종되었다. 학술적 허영으로 장식된 모자를 뒤집어 쓰고, 날조된 모더니즘의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대문을 나서는 그대. 겨울이 끝나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콘크리트 담벼락 밑에는 지난 밤 살해당한 바람의 시체들이 유기되어 있다.
해질 녘부터 눈여겨 보았는데 웬일일까? 저 집엔 불이 켜지지 않네. 귀를 쫑긋 세워도 웃음 소리 하나 발자국 소리 하나 잡을 수 없네.
웬일인지 모르지만 한적한 뜰을 보면 나는 들어가 서성이고 싶어라. 빈 부엌 아궁이에 남비를 얹고 싶고 쓸쓸한 의자의 먼지라도 쓸고 싶어라. 나는 모든 빈 집에 내 손을 태우고 싶어라. 빈 마루에 길게 누워 마룻장과 길낄거리고 싶고 지나간 달력을 떼어주고 싶어라. 잠든 고양이를 깨우고 싶어라. 달빛에 흠뻑 젖은 마당에 꽃씨라도 뿌리고 싶어라.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 김재진 ... 藝盤예반 *.*
이렇게 세월이 한 곳으로만 몰려가는 법도 있구나 유난히 녹이 많이 슨 함석지붕에 앉아 늦가을 들판을 본다 어느 먼 옛날에 한 목수가 지붕을 못질할 때 못질한 부분의 상처가 이렇게 덧날 줄 알았을까 밤이 되면서 이 상처 속으로 별들이 들어가고 가끔 빗물이 스며들어, 이윽고 사람 떠난 구들장 위엔 꽃들이 조그만 얼굴을 내민다 .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 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 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 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 단단한 뼈 > / 이영옥 ... 藝盤예반 *.*
Dust in the Wind (From 'Queen of the Ring -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 Corey Taylor · Bad Omens · Aaron Gilhu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