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철의 두개골

피로가 두개골을 옆사람 어깨 위에 기우뚱하니 얹어놓았다. 옆사람은
어깨를 자꾸 들썩인다. 지하철에서는 두개골이 무거워도 얹어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가죽가방처럼 두개골을 선반 위에 얹어놓을 수
는 없는 일. 두개골을 바로 세워 본다. 모두들 묵직한 두개골을 목 위에
얹어놓고 이동중이다. 어디로들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죽음은 확실하
다. 해골들은 예외가 없다. 목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그때쯤이면 피
로는 몸이 홀가분해진 유령처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계단 위에서 혼
자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2 자살의 풍경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학생은 왼손에 만화책, 오른손에 핸드폰을 쥐
고 있었다

수족관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
뛰쳐나간 어류처럼
흐린 수족관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그저 늙는 어류처럼
흐린 수족관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그저 늙는 어류처럼

3 빌딩들

넘실거리는 밤바다 대신 높다란 빌딩들이 있다
지붕에 만년설을 얹어주고 싶은 빌딩들
빙산처럼 장엄하지 않고
수평선 위를 고요하게, 눈부시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며
옥상에 펭귄들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닌
빌딩들의 가을에
하늘에서 단풍든 벽돌들이 떨어질까

4 벽

베란다, 높다란 벽들과
벽의 네모난 구멍들을 내다보며
담배를 태우는
형무소 망루 같은 베란다

건물에서 나와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낮에도 그렇고 밤에도 그런 광경
건물에서 나와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유령들이 인생은 건물 속에 있다는 듯이

5 코끼리 유령에 관한 농담

밤의 골목은 텅 비었다
찢어진 큰 귀
큰 귀를 너펄거리며
코 없는 그림자들이 도망친다
길 잘못 든
귀향길의 코끼리 노부부 유령이었나?

6 수평선

쓸모는 없다
그러나 존재한다
값이 제로
그러나 존재한다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한다 

                 < 수평선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 / 최승호


           
   
                                                      ... 藝盤예반 *.*


 
Beyond The Reef · Lisa 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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