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왔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촛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요''더우세요'
눈물 겹도록 착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 줄 게 있다고 왼쪽엔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 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 반성 743 > / 김영승


         
   
                                                      ... 藝盤예반 *.*


 
Michael McDonald - Tell It Like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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