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재빠르게 단추를 채우고 끝없이 긴 마루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교대 시간이 멀지 않았다 한번 훑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 속에서 그래도, 벽의 스위치를 올렸다 사내는 천천히, 그의 뒤로 삐걱거리며 따라온 소리가 벽이 온통 창문인 벽의 희끄무레한 먼지 낀 풍경을 흔들었다 바람은 몹시 불었다 수은주의 눈금도 더 이상 내려가기 힘들어 수은을 흘렸다 사내는 코를 풀었다 아주 천천히 추억이란, 추억이란, 추억이란 크리스마스 캐럴이 어디선가 울렸다 추억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발밑에 나이테가 희미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용돌이 정말 어떤 마룻장들은 틈이 벌어져 있었다 추억이란 저 마루의 틈을 벌리는 시간은 아닐까 마루 복도 밑 바닥에 아이들이 밥 먹다 빠뜨린 젓가락같이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이 저녁 내 가슴을 벌리려 애쓰는 것은 아닐까 먼데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죽은 나뭇가지를 툭툭 쳤다, 사내는 창문에 머리를 대고 차갑게 죽은 나뭇가지가 부러져나가는 어둠 속으로 주름이 지렁이처럼 자라는 손을 뻗어 가만히 댔다 내 손의 남아 있는 온기를 타고 뿌리의 욕망이여, 가지 끝으로 올라가 잎을 틔우라 저쪽 맨 끝 복도의 스위치를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그는 제복과 모자까지도 무척 낡았다, 오늘따라 굽은 등이 더욱 굽어 보이는 그는 금방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사내가 나올 때까지 안간힘을 다해 타고 있던 정문 옆 집무실의 난로는 차갑게 꺼져 어둠 속에서 얼음이 살아오르고 있었다 사내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부러진 다리를 다시 박은 낡은 의자를, 한쪽 다리가 짧아 보이는 의자를, 그 얼음이 맺고 있었다, 교대자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혹시 왔다가 그 젊은 교대자는 말라죽을 영감 불은 꺼놓고 어디를 싸 다니는 거야 욕을 퍼부으며 투덜투덜 검게 빛을 내는 석탄광으로 내려간 것은 아닐까 아주 느릿느릿 왔던 곳의 반대편 입구로 걸어간 늙은 사내는 두껍게 쳐진 어둠의 幕에 가려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 속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전히 죽은 나뭇가지를, 땅 위로 뚝뚝 부러뜨려놓았다 < 크리스마스 캐럴 > / 박형준 ... 藝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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