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대체 김현이가 싫다.
그의 도수 높은 안경이 싫고,
안경 뒤에 노루처럼 순해 보이는 눈이 싫고
(안경 끼고 눈이 순한 사람은 경계할 일이다).
사소한 데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며칠씩 깎지 않아
멋대로 터럭이 자란 턱이 싫고, 최근에 특히 부른 그의 술배가 싫다.
술배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한없이 삼키는 그의 주량이 싫다.
술값도 문제는 문제지만, 내가 혹시 술 때문에 일찍 죽즌다면
뛰어난 시인 하나를 조사(早死)시킨 죄의 한 가닥을
그가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남을 압도하려는 듯한 그의 웃음이 싫다.
안면 근육을 총동원하지만 웃음 소리 자체는 큰 성량에 비해 아주 낮다.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내심으로는 정신차리고 있는 증좌다.

그는 늘 바쁘다. 직장이 같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내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자동차, 강의실, 자동차, 다방, 강연장, 자동차, 원고지, 자동차, 술집
대략 이런 순서로 하루종일 뛰어다닌다고 막연히 상상할 뿐이다.
나하고 만나는 순간은 대체로 며칠에 한 번씩 그의 마지막 식순 무렵이다.
휴게실에서 한가로이 바둑판을 들여다보는 그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나는 같은 직장에서 나보다 몇 배 바삐 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좀처럼 화를 내는 일이 없다.
요컨대 그는 음험하다.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교묘하게 감춰진 문맥으로
남을 공격하곤 한다. 화가 나는 사람에 대한 부분일수록 그의 글은 냉정해진다.
동업자의 하나로 그 테크닉을 괜찮은 것의 하나로 치고는 있지만
테크닉은 테크닉이고 같이 사는 친구는 친구인 것이다.

작품을 읽을 때 그는 곧 자기 체계 속에 그것을 집어넣는다.
비평가들의 그런 행위가 자주 얼토당토않은 결과를 낳아야 신이 나는 법인데,
대체로 잘 들어가 맞는다면 싫어질 수밖에 없다.
그놈 때문에 자기 작품의 비밀이 밖으로 드러나는 불쾌감을 맛본 시인이나 소설가가
꽤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비밀의 일부라면 비평가들에게 흔쾌히 선사할 용의를 갖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는 고집이 세다. 그리고도 포용력이 좁지 않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숨기고 고집 센 면만 내보인다.
혹은 위의 말의 거꾸로이던가?
하여간 나는 그 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하수인데도 승률이 비슷한 그의 바둑이 싫다.
요새는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아 나는 별로 끼지 않지만
그가 10원짜리 포커판을 자주 휩쓴다고 하니
그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늘어났을 것이다.
호랑이 없는 산에서 여우가 왕 노릇 하는 격이랄까.
포커에 대한 그의 지성(至誠)이 자못 간절한 데가 있기는 했다.
언젠가 그의 마누라가 상당히 큰 수슬을 한 일이 있다.
그날 그는 밤늦게까지 우리집에서 포커를 했고,
따라서 그의 마누라의 눈에는 내가 사탄 비슷하게 비치게끔 되었다.
마누라에게 친구를 악당으로 만드는 일은 일종의 호신술이겠지만
딴마음이 업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울 리가 없다.

이렇게 쓰다 보니 ‘싫다’는 말을 대체로 ‘좋다’로 바꾸어놓아도 좋을 것 같지만
그런 말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그가 없으면 생이 얼마나 삭막할 것이냐를 고백함으로써
이 글을 읽고 그가 혹시 품게 될지도 모르는 앙심을 달래기로 하자.

 [현대문학] 1973년 8월호

                                      
        
                                  ... 藝盤 .


Gotthard -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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