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 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암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 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차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헤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밟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 신발의 꿈 > / 강연호

     
                                      ... 藝盤 *.*
꽃신속의 바다-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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