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畵集의 움직임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절망은, <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 장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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