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이랑 즐겨 가던 '그라베'.. 동성로에서 대구역 쪽으로 팥빙수 전문점이 있었어. 상가 건물의 왼쪽 끝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한 사람이 올라갈 정도로 좁은데다 거의 60도 경사의 엄청 가파른 철계단. 때문에 늘 남자가 먼저 올라가지. 미로처럼 올라가면 반기는 공간은 세 평 남짓? 작은 테이블이 두어개, 안 쪽으로 대여섯이 꼭 끼어 앉을만한 흑갈색 테이블. 근데 이 부정형의 테이블이 명물이라.. 다녀간 온갖 이들이 이런 저런 글귀, 낙서를 새겨놨다. 사랑얘기.. 이름.. 하트 그림.. 나도 그사람 몰래 이니셜을 새겼지. 그라베.. 팥빙수 전문점 답게 메뉴가 화려했어, 10여 가지 정도 됐던거 같은데 유리로 만든 얕은 보울에 식판처럼 여러 칸이 나눠져 있어. 고급 팥빙수는 8,9칸 됐던가 땅콩, 건포도, 바나나, 딸기, 호두, fruits.. 좌우간 드레싱 레퍼토리가 엄청 다양했던 기억이.. 얼음과 함께 칸칸이 다양한 재료가 담겨있고, 예쁜 꼬마그릇에 우유를 함께 줬어. 그 당시 3~4천원 했으니까 꽤 고급 메뉴였지. 글쎄.. 요즘의 화려한 팥빙수 레퍼토리에도 뒤지지 않을.. 계절에 관계없이 늘 매니아들이 찾아왔고, 안쪽 테이블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팝빙수를 먹을라치면 마치 무슨 스터디를 하는 기분이야. 그때..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들'이란 미드가 엄청 유행하던 때라.. 근데.. 그라베.. 그 집의 또 다른 압권은 화장실이었어.. 좌변기에 앉으면 꽉 찰 듯한 좁은 공간이, 4면이 모두.. 전면 거울이거든.. ... 藝盤예반 *.* GRABE - Abigail Baña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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