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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하는 여자에게 있어선 남자가 그 목적이다. 그러나 연애하는 남자에게  있어서는
   그가 아무리 열중하고 있을 때라 해도 여자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말이 진실이겠습니까?
     "여자는 남자를 위해 만들어지고 남자는 신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말이 또한 옳겠습니까?
     "남자는 원하고 여자는 준다."

   정녕 이런 것이며 또 이래서 좋겠습니까?
   남자들은 결코 다 주지 않으며 항시 먼저 걸어 가 버린다고만 여겨지는 그  허다한 소행을
   우리는 어떻게 삭여 넘겨야 하겠습니까?

   하나의 슬픔 끝에 또 하나의 슬픔이 와서 슬픔을 이어 가는 한없는 고리(環)가 되기도 하는 사이
   우리는 늙고 마침내 죽는다고 여겨지는 그 춥고  헐벗은 심회(心懷),
   평범한 의무와 굴곡 없는 상심(傷心)의 되풀이, 그리고 긴  시간......
   에누리 없이 위의 모두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차탄(嗟歎)만을 일삼을 수는 없습니다.

     남편은 노상 차갑고, 낭비가 심하고, 심지어는 다른 여자를 사귀어 깊은  관계에 빠지고,
   그 때문에 연거푸 외박을 한다고 해도 아내들은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빈집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격이 우월해서가 아니고 참아  넘기는 힘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한 시간 한 시간을 깜빡 죽는 것과 같이  어렵게 견디고 모질게 지탱해 간다고 해도
   종내 이 길만이 아내들의 생활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얘기가 낡은 윤리와 묵은 부덕을 표방하는 것 같지만,
   실상  여기엔 낡고 새로운 이치가 따로 없고 언제건 변함없는 삶의 원리가 꼭 한가지  
   있을 뿐입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건 우리가 고독한 증거이다."
   이렇게 말한 이가 있습니다.  물론 남자입니다.  하면 그들도 처음엔
   여자를 통한 고독의 치유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무섭게 독점의 의욕을 갖는 것이고, 한번 여자의 사랑속에  들어 온 남자는
   누구나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이탈을  꿈꾸게 되고
   열심히 몸부림쳐서 종내 홀가분한 맨몸뚱이가 다시 되었습니다.  
   얼마쯤 허전했지만 차라리 이걸 견디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쯤 되면 내  얘기가 자못 과장된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실은  별반 먼 거리의 얘기가 아닐  줄로
   나는 믿습니다.
   남자는 정복을 여자는 독점을 요구하며 양편이 다 터무니 없이 과욕(過慾)에  빠지길 잘 합니다.  
   마침내 서로가 다 고독하게 되고 고뇌를 외치는 처절한  고함을 발하게 됩니다.
   하면 이건 정녕 예사로운 비극이 아닙니다.

     To be Continued.....

                                                                                   <진실로 사랑하기 위하여> /김남조

                                                                                                                                                                         ...藝盤 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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