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을 몇 푼 찾아가지고 은행을 나섰을 때 거리의 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려 놓았다 대출계 응접 코너에 앉아있던 그 당당한 채무자의 모습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신촌 일대를 지나갈 수 없었다 인조대리석이 반들반들하게 깔린 보도에는 껌자국이 지저분했고 길 밑으로는 전철이 달려갔다 그 아래로 지하수가 흐르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시뻘건 바위의 불길이 타고 있었다 지진이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만해도 다행한 일이지 5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의 한 귀퉁이 1,000만 시민이 들끓고 있는 서울의 한 조각 금고 속에 넣을 수 없는 이 땅을 그 부동산업자가 소유하고 있었던 마음대로 그가 양도하고 저당하고 나는 온 종일 바둥거리며 일해서 푼돈을 벌고 좀팽이처럼 그것을 아껴가며 살고 있었다 < 좀팽이처럼 > / 김광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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