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는 그 집 뒤편에 1950년대 후미끼리 목재소 나무 켜는 소리 들리고, 혹은 눈 내리는 말, 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 타종 소리 들린다. 김 나는 국밥집 옆을 지금도 기차가 지나가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빨리 죽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파자마 바람으로 누워 계신 그 옛집, 기침을 콜록콜록, 참으면서 기울어져 있다.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자도 폐인이지만 배를 움켜쥐고 퀭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신 아버지.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 한 1950년대; 새벽 汽笛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 공복감을 키우던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출발을 음모했던 것; 그게 내 삶이 되었다. 그리움이 완성되어 집이 되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내 삶이었다. 그러나 꼭 망명객이 아니어도 결국 폐인들 앞에 노스탤지어보다 먼저 와 있는 고향. 가을날의 송진 냄새나던 목재소 자리엔 대형 슈퍼마켓; 고향에서 밥을 구하는 자는 폐인이다. < 타르코프스키 監督의 고향 > / 황지우 ... 藝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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