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가 혼자서 달빛 같은 소리를 내는 수가 있다. 해묵은 황죽黃竹을 다듬어 만든 명품이 바람의 결이 달라진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그것은 강원도 변방에서 태어난 첫 가을바람이 달아오른 기류를 밀어낸 산뜻한 손으로 처음으로 옥수수 잎새를 흔들기 시작하던 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침을 발라 구멍을 내었던 큰방 미닫이 창호지가 이따금 먼 피리 소리를 내며 문풍지같이 떨던 어린 날 겨울밤은 무서웠다. 헛간 뒤 토담에 기대어 서 있던 키 큰 수숫대 그림자를 시린 달빛같이 흔들던 사나운 바람소리보다 고요히 깊어가던 밤의 보이지 않는 밑바닥이 더 무서웠던 겨울밤. < 겨울밤 피리소리 > / 허만하 ... 藝盤예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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