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무척 추울 것이라고
술 취한 선배는 비틀거리며 막차를 탄다
마흔을 넘긴 지 오래된 그가 남긴 한마디가
얼어붙는 거리, 그림자가 아른거리면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뒤돌아본다  뭔가 보일 듯하면서 사라진다 스물 아홉 

낡은 페이지를 넘기며 어둠이 나를 덮는다
읽어야 할 페이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언제나 서두르며 나를 재촉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다
눈이 내리면 그때의 일들이 뜨문뜨문 떨어진다
처마 밑에서 올려다본 하늘 아래
오랜 생의 한부분인 고드름 속에 물방울들이 굳어 있다
아직까지 나에게 세계라는 것은 저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물방울 속에서 스며 나온 아이들의 눈동자 속으로 열리는 길
길을 밟으며 갈 곳이 어딘가 하고 생각한다

아직도 여기를 떠나지 못하다니
수많은 결심들이 나를 떠다민다 삶들이 뒤섞인 미친 거리로
아직도 거리는 아름다운가 거리는 서정적인가?
알 수 없다 혼란 속에서 언제나 나는 한 문장을 쓴다
스무 살의 글들, 뒤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후회도 없다 

걸어갈수록 거리는 나에게 작은 방이 된다
이렇게 빨리 서두르며 겨울을 데려오는
지난 계절은 무책임하다 산문적이다 언제나 마지막 같았던

이 겨울에 어쩌다 눈에 띄는 나뭇잎 같은 생각들이여
떨어져야 하는가 나뭇잎이 떨어질 때마다 내 쓰레기통 속에
수북히 쌓이는 종이들 내 청년의 구겨짐들
상처가 아물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조그마한 그녀 조그마한 생각이여
거기 있어라 스물 아홉이여
너를 거기에 남겨 두고 낡은 수레바퀴처럼 나 굴러 가리니
머물러 남을 것은 깊숙이 패이는 바퀴 자국뿐
내 가슴에 쓰러진 불빛을 일으켜 세우며 늙은 선배의
뒤를 따라 나 가리니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일들이
군데군데 그물을 치고 있을 것이다 : 많은 삶들이 있을 것이다 막차를 기다리는 저
불빛 아래의 사람들, 그저 한덩어리의 어둠인 사람들이 굳어
있을 것이다 

그걸 나는 알아 버린 것이다  

                 < 스물 아홉의 겨울 >  / 원재훈

  
                   
                                                       ... 藝盤예반 *.*                          
                                                    

Janis Ian. In the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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