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스물둘밖에 안 된 여자가 많은 것을 안다 강의가 끝날때쯤, 이 근방에 점심 맛잇는 데 아세요 도전적이다 남자는 이게 왠 떡이냐며 돼지갈비쯤 생각한다 경제에 눈이 좀 뜨인다면 맛있는 집을 생각한다 골목 쪽을 생각한 남자와 달리 여자는 쇼윈도에 진열된 피자집으로 레귤러 피자를 겁도없이 시키고 생글생글 웃는다 피자와 콜라가 설컹설컹 맴돌아 식사라는 생각이 들지않는 남자는 그 순간에도 돼지갈비가 아른거리고 순대국의 고소한 국물이 그립다 십여 만 원의 피자를 카드로 찍 긋고 입가심으로 호프나 한잔 하자면서 흑심을 품는다 호프를 마시면서 주량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여자는 소주 두 병이얘요 기분이 좋아진 남자가 소주 좋아하세요 아녜요 그럼 맥주 아녜요 양주를 좋아해요 남자는 기분이 나빠진다 양주는 독하잖아요 저지해본다 뒤가 깨끗하잖아요 깰 때 깨끗하잖아요 XO-17년 짜리가 좋아요 남자의 기분은 구름이 낀다 술 잘 마시나요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의 여자에게 자주 마시느냐고 얼버무린다 제 친구들 죽여줘요 며칠 전 압구정에서 친구들하고 마시다가 탤런트들 하고 어울렸는데 새벽까지 날샜어요 저는 볼일이 있어 5시까지 집에 갔는데 걔들은 날샜어요 요즘은 새벽 다섯 시까지 양주를 마시는게 일찍인가 남자는 생각하며 기분이 더욱 가라앉는다 경천 동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튼 소녀 티도 안 벗은 게 대단하다며 무책임한 발 걸음으로 호프집을 나선다 3. 앉은뱅이 풀이 말을 건다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거유 난 한평생 이렇게 앉아있어도 나비도 오고 벌도 입맞춤하며 지나가는 구름까지 바람을 안겨주고 가는데 앉아만 있어도 향기 천리까지 가는데 그렇게 헐레벌떡 어디를 가는 거유 그렇게 쏘다녀 무엇을 잡고 무엇을 찾아 무엇을 남겼단 말이유 그림자 하나밖에 남은 게 없는 그런 삶 살아 무얼 하려고 그렇게도 바쁜 걸음을 걷느냐고 풀들이 웃는다. < 꽃, 꽃의 무위 - 기한의 이익으로 부터의 시작 > / 박남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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