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등 2년 때 가출한 그를 찾으러 갈꽃 피는 여수 남쪽 섬을 간 적이 있었다 흙바람 가득한 섬은 아우의 행방보다 더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도 그를 보면 흙바람 같다 아우는 밤에 홀로 思考한다고 썼다 그리고 편지 끝에 원서 비용으로 6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시골 관청의 8급 주사보이고 점심은 사무실에서 시켜 먹고 화투를 쳤고 가끔 여자들이 도시에서 찾아왔다 밤에는 그러나 혼자 잠들고팠다 안개는 무시로 깔려와, 내 기관지는 자주자주 다치더니 나는 며칠의 病暇를 내고 버스를 탔다 아우는 지방 대학의 철학과와 신축도서관에 묻혀 지냈다 어느 날 그의 흙바람내 나는 서랍을 뒤져보았다 스스로 고독한 차르라 칭한 아우의 비망록, 악필이었던 글씨는 여전했고 끝없는 단상과 부호 같은 일기 반년 전부터 복용하는 아이나와 에탐부톨이 칼로 자른 넋처럼 하얗게 빛났다 결재 파일과 대차대조표를 뒤적이다가 봉화 영양 안동 예천으로 출장을 떠나며 나는 혼자일 때는 머나먼 섬까지의 뱃시간을 베끼고 문득문득 아우가 보낸 편지가 왔다 아우는 회의주의 학파의 색인을 정리하고 나는 시를 쓰다 관두다 했다 사흘마다 숙직실에서 밤을 새웠다 유리창은 늘 두텁게 서리 끼고 연탄 가스는 조금조금 스몄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 도장을 찍고 1,300원의 숙직비로 점심을 때우거나 겨울 문예지를 샀다 아우는 19세기 러시아 지성사를 번역해갔다 나는 섬의 외로움으로 깊어진 밤에 이윽고 술을 마실 뿐 아우는 읽던 책을 건네준다 나는 사람과 싸우며 며칠을 끙끙거리고 아우는 아침마다 스터디 그룹에 나갔다 아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밤에 스피노자*를 읽으면 집 근처 신기료 사내는 마치 우리들 보행의 자유를 위해 신발을 고치는 도시의 스피노자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편지 끝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싸늘한 숙직실 유리창에 서리 흔적으로 섬이라고 써보았다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갈았다. < 섬 1 - 편지 > / 송재학 ![]() ... 藝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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