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타고 올라가는 푸른 넝쿨을 바라본 적 있다.
투명한 햇살에 속 내비치는 넝쿨의 이파리들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앉았던 적 있다.
달리던 삶에서 갑자기 내려
같이 가던 사람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서 있을 때
멀리 하나씩 길들이 떠오르고
먼지를 피워 올리며 사라지는 버스가 남겨놓은
남루한 얼굴들 사이로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 들린다.
하늘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의 저 연두,
또는 초록의 이파리들도 사실은
빛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
사랑 또한 그런 것이다.
저녁이 오면 내 마음은 습관처럼
헛된 약속을 위해 서두르지만
아무것도 기다리는 것이란 없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결국 그것과 다르지 않다.
눈감고 올려다보는 창 위로 이윽고
푸른 넝쿨은 사라진다. 한때 내 마음을 휘감고 올라가던 연두,
도박 같은 것, 아니면 비루한 호구糊口나
순간을 휘감는 질투 같은 욕망
더러는 바람소리 나는 새벽의 산책 또한 그런 것이리.
아름다움 또한 다르지 않다.
짐짓 허리 펴고 앉아 이마를 드는 저 산의 입정入定.
한 마리 산새가 깨워놓은 침묵에 무너지는
거짓말 같은,
꿈.
막다른 골목의 투항처럼 나는 슬리퍼 사이로 맨발 드러낸 채
삶의 한때를 흔들어 놓던 질문들에 매달린다.


             < 푸른 넝쿨 > / 김재진

          
                                ... 藝盤 *.*

Miles & Miles - She's So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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