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내리치는 막차다. 귤 한 박스가 발 밑에 있다.제주도 를 떠나 이곳 저곳을 거쳐, 여기 마지막 버스에 오른 것이리라. 그러니까 귤의 신맛에는 귤의 멀미가 서려 있는 것이다. 눈보라 가 차창에 달라붙어 밖이 분간이 안 된다. 버스가 고개를 트는 대로 여기는 암소고개고 여기는 성당부락이고 여기는 쑥골이라 고 짐작할 뿐이다. 여기다. 여기가 고향 황새울이다.지금쯤 복수가 가득 찬 간경 화의 아버지는 아랫목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윗목에서 삼을 잣고 계시리라. 초저녁잠이 많으신 할머니는 큰손자를 기다리느 라 눈에 성냥개비를 받치고 계시겠구나. 가방을 챙기고 어깨에 귤 박스를 들쳐 멘다.낯 선 곳은 아니지만 고향 황새울이 아니다. 가만 살펴보니 가작터 방앗간 앞이다. 한 정거장을 더 왔다.어깨 에 들쳐 멘 귤 박스가 무겁다. 추운 밤길을 걸으며 생각해본다. 사는 동안,늘 한 정거장 덜 미 쳤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꼼꼼하게 돌아보면 한 정거장 더 와 서 눈보라 맞고 있는 것이 삶이다. 왜 이리 삶이 추운가? 눈보라 가 나를 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눈보라를 앞서서 치고 가기 때문 이다! 나는 지금 천천히 가고 있나? 투덜거리며 되돌아오고 있 나? 아니면, 아직도 버스시간 멀었다고 터미널 근방에서 소주나 까고 있지 않은가? < 한 정거장 더 왔다 > / 이성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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