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새벽 열차 안이다. 잊으신 물건 없이 내리라 한다. 술에 취하면 열차를 타는 못된 버릇이 발동한 것이다. 요번 주만 두 번째다. 부랴부랴 내려서 총알택시를 탄다. 낙엽도 쓰레기도 얼어붙어서 골목길이 참 조용하다. 내 발자국만이 숨소리에 맞춰 비척거린다. 먼저 환경 미화원들을 만난다. 나는 너무 작아져서 시집(詩集) 만해 진다.아저씨 중에 한 분이 날 쳐다본다.나 는 바쁜 일을 마치고 귀가하 는 사람인양,어깨를 펴고 걸음걸이를 다잡는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 멀리서 큰 가방을 메고 한 아주머니가 걸어온다. 우유를 배달하는 아주 머니다. 서둘러 웃옷에 얼굴을 우겨 넣는다.걸음걸이도 낯설게 바꾼다. 평상시 배달 우유를 먹지 않는게 다행이란 꼼수가 머릿속을 헤집고 간 다. 이번엔 한 청년이 식식거리며 뛰어온다.신문 배달하는 대학생이다. 앗, 아는 청년이다. 나는 골목길로 몸을 숨긴다. 세상이 온통 적이란 생각이 든다. 휴, 이제 다 지나갔다. 내 하루의 끝 자락에 하루를 시작하는 스승들. 무사히 현관 앞에 선다. 문제는 지금부 터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아내가 기타를 치고 있다. 몸이 부르르, 모서리 낡은 시집의 낱장을 마구 넘긴다. < 새벽열차에서 내리다 > / 이정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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