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나서야 답장을 씁니다 늦은 새벽 어두운 골목을 돌아 닿곤 하던 집 내 발자국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 바람 소리로 뒤척이던 나이 많은 감나무, 지난 가을 당신 계절에 붉게 물든 편지를 하루에도 몇 통씩 마루에 올려 놓곤 했지요 그 편지 봉하기 위해 버려야했던 잎들은 모아 태워도 마당 가득 또 쌓여 있었습니다 나 그 마음도 모르고 편지 받아 읽는 밤이면 점점 눈멀어 점자를 읽듯 무딘 손끝으로 잎맥을 따라가곤 했지요 그러면 거기 내가 걸었던 길보다 더 많은 길 숨겨져 있어 무거운 생각을 지고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당신, 끝자리마다 환한 등불을 매달기 위해 답답한 마음으로 손을 뻗던 가지와 암벽에 막혀 울던 뿌리의 길도 보였습니다 외풍과 함께 잠들기 시작한 늦가을 그 편지는 제 속의 불길을 꺼내 언 몸을 녹이고 아침마다 빛이 바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 폭설이 많았던 겨울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는 길가 마늘밭에서 지푸라기 사이로 고개 내민 싹들을 보았습니다 올해는 누가 당신의 편지 받아 볼는지 나는 이제 또 다른 가지를 타고 이곳에 와서 당신이 보냈던 편지 다시 떠올립니다 < 늦은 답장 > / 길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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