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보다 죽어 사라질 때 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죽음은 사망진단서에 붉은 인주가 찍힐 때 비로소 완성된다 평생 사용했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탄생을 증명하던 본적과 생년월일을 적을 때까지 글자에서는 아직 그의 숨소리 들린다 빈 칸을 메우다보면 비워두어야 하는 삶이 마디가 보이고 굳은살도 보이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왔는지 나는 안다 死因을 기록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한참을 망설이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야 한다 이윽고 그가 죽는구나,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구나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신부전증이거나 암이라고 사실대로 적으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다 지나친 욕망이 그의 심장이나 뇌혈관을 막았거나 세상 온갖 절망을 걸러내지 못해 피를 말리며 살아왔거나 숨찬 생을 헉헉거리며 살다 지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라고 쓰고 싶다 빈 칸을 채우면 종이에서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고 서명하고 날인을 하면 그의 죽음은 이제 증명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글자 몇 자가 진정으로 그를 죽게 할 수 없음을 가벼운 종이 한 장도 가져 갈 수 없는 죽음의 의미를 < 사망진단서 > / 박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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