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걸어 왔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사 쓰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고 마음이 아프면혼자 견디면 된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남에게 얘기하면 화제가 빗나가기 일쑤다. 있을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늘 생각하고 이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을 생각한다. 그러나 무슨 대비책이 인생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늘 머리 아프게 내일을 생각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또 다른 날에 이르러 나는 늘 혼자였으므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났다. 나는 그래서 늘 바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늘 쓸 데 없어 보이는 여러 생각에 골몰했으므로 나는 늘 긴장했다. 오늘 있는 현실의 가장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 본다는 것은 얼마나 고달픈 노릇인가. 내일, 내일이 늘 있어서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곁에 두고서 나는 나 혼자서도 이미 가득한 세계의 한 가운데 늘 있었다.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이 잘 서지지 않는 밤이면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나의 속 모양을 남들은 볼 수 없었으나 환한 대낮에도 이런 누추한 속 모양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더 조용히 살아 갔다. 비도 오고 눈도 내렸다. 바람도 불고 먼지도 날렸다. 아무도 돌아 보는 사람 없어도 나는 부지런히 살았다. 대개 갈등이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본래 내가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살 때에 그 자리가 자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게서 어떤 자리를 가져 가고자 하였다. 또는 내가 생각하는 자리를 내가 다가가 가지려 할 때에 누군가가 이건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는 음모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구나 나를 내 그대로의 순수한 나로 볼 수 있도록 내가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살았다. 많은 오해가 있었다. 나도 남들을 때로 많이 오해하며 살아 온 것일까.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누구나 사실, 가능만 하다면 이 세상 모든 좋은 자리를 다 가지고 싶을 것이란 점에서 출발하자 더욱 복잡해져 갔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처음 그 자리였다. 본래 세상은 크건 작건 그런 식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저 먹은 마음 없이 사는 동안에 나는 멍청한 놈이거나 음험한 놈으로 이런저런 사람들 마음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럴 일도 아니다. 아마 대개 그렇겠지만 나는 그 이전에 그럴 가치도 없이 지워져 있으리라 아예 싹 무시되어져 있으리라. 어차피 거기서부터 나는 시작했고 어쨌든 혼자 열심히 걸어 왔다. 착한 마음으로 그러나 객쩍게 당하지는 않으려는 지혜를 닦으며 살아 가고자 했다. 더 큰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당한다 하더라도 내 무능을 그곳에 묻어두는 변명의 소리나 중얼거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아, 그러고 보니 나는 혼자 걸어 온 것은 아니었다. 이 무수한, 저 무수한 사람들과 더불어 걸어 온 것이다. 크고 작은 높고 낮은 무수한 마음들, 그, 늘 움직이는 둔덕들과 산맥들과 강과, 바다가 옛날에서 오늘에까지 함께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대 눈을 감아도 세상은 늘 있고 어쨌든 세상은 그대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니, 언짢아 하지 말라.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 많은 소리들의 우주에서 미아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 자신에서 가장 순수하게 또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 늘 그렇게 처음 걷기 시작할 때처럼, 걸어 간다. 서툴 수밖에 없이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걸지 않을 수도 없이 나는 걸어 간다. 살아 가야 한다.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 세상이 나로 인하여 아름답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니, 내가 더 아름답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여하튼 걸어 가야 한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이 나보다 더 먼저 걸어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 성급하게 굴어서 될 일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은 짧다. 허투른 생각으로 인한 실수라도 줄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면이 또 바뀌고 나는 걸어 가고 있다. 아직, 나는 살아 가고 있다. 하늘이 푸르다. 구름이 낀다 한들 또 어떻겠는가. 나는 걸어 가야 한다. 한 순간 갑자기 아주 어두워질 때까지 부끄럽지 않은 발길을 남기고자 해야 한다. < 한 순간 갑자기 아주 어두워질 때까지 > / 장영수 ... 藝盤예반 *.* Poison - Life Goes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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