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에 한 척의 방이 정박해 있다
저 방에 올라타기 위해선 먼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백마흔여섯 계단 위에 떠 있는 섬 같은 방
바람이 불 때마다 티브이 안테나처럼 흔들렸다가
세상이 잠잠해지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딴청을 피우는 그녀의 방은
1m높이의 파도에도 갑판이 부서질 만큼 작고 연약한 쪽배다
저 쪽배엔 오래된 코끼리표 전기밥통이 있고
성냥개비로 건조한 모형함선이 있고
좋은 추억만 방영하는 14인치 텔레비전이 있다
갑판장 김씨를 집어삼킨 것은 20m의 파고라고 했던가,
사모아제도에 배가 침몰하는 순간 그는 어쩌면
가랑잎 같은 아이를 가랑가랑 쪽배에 싣고
신출내기 선장이 된 그녀,
멀미보다 힘든 건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 쌓일수록 계단 숫자도 늘어
어느덧 산꼭대기까지 밀려온 쪽배 한 척
그녀에게선 사모아제도의 깊은 바다냄새가 난다
높은 곳으로 올라야 아빠별을 볼 수 있다고
밤마다 전갈자리별에 닻을 내리는 쪽배의 지붕으로
백년 만에 유성비가 쏟아져 내린다

<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
                                                / 고영

                                                     
                            ... 藝盤예반 *.*
 



Neil Young - See the Sky About to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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