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다리다 허기마저 지친 오후 방죽 너머 긴 머리채를 푸는 산그늘이 서러워질 때 언젠가 무작정 상경하고 싶었지만 갈 곳 몰라 이름 모를 역광장에 입간판처럼 서 있을 때 어느새 조약돌만큼 자란 목젖이 싫어 겨울 다가도록 목도리를 풀지 않고 상심할 때 쉽게 다치는 내성의 한 시절을 조용히 흔들며 가만가만 가지마다 둥지를 트는 속삭임 옛날에 나는 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네 내가 실연의 강가에서 하염없이 출렁거리는 작은 배 한 척으로 남아 쓸쓸해질 때 세상의 모든 그리운 것들은 도무지 누군가 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줄 모른다며 알면서도 모른 척 무시한다며 야속해질 때 그래, 비밀 같은 바람소리였네 숨 죽여 들을수록 낮아져 하마 끊길 듯 이어지는 다독거림 옛날에 나는 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네 허나 운명은 언제나 텅 빈 복도를 울리며 뚜벅뚜벅 걸어와 벌컥 문을 열어젖히는 법이네 다짜고짜 따귀를 후려치고 멱살 낚아채 눈 가리고 어디론가 무작정 끌고 가는 것이네 내 어느날 문득 더 자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묵념처럼 세상은 함부로 권태로워지고 더 이상 간직할 슬픔 하나 없이 늙어가는 동안 옛날에 나무에 스치며 나를 키우던 바람소리 다시는 듣지 못했네 들을 수 없었네 < 옛날에 나는 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네 > / 깅연호 ... 藝盤예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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