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은 전화를 받지 말아야지. 나 혼자 오롯이 지내봐야지. 전화벨 소리 조절기를 가장 작게 줄여놓고 롯데백화점 종이가방에 전화기를 넣은 다음 방석으로 덮습니다. 자주 전화가 오는 날은 받다가 말다가 말다가 받다가 저녁 느지막쯤부터는 의기양양 아주 안 받을 수 있지요. 나는 유쾌한 섬이 되지요. 그런데 전화가 드문 날 저녁엔 처음 한두 번까지 나흘 굶은 귀뚜라미 같은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은 척하다가 세번째 벨이 울릴 무렵 허둥지둥 꾸러미를 풀고 전화를 받습니다. 그저 누구인가 궁금한 거예요. 이때 내가 주눅든 볼멘소리로 대꾸하는 것 이해하시겠지요? 평생 전화기 근처를 서성일 나. 아무래도 전화를 반납해야 될까봐요. 이렇게 생각하니 오싹 세상이 추워지는군요. 비틀어진 탯줄이 전화선. < 어느 개인 가을날 > / 황인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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