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저 아득한 별에서
이 시대의 가장 구체적인 겨울 외등까지
구호도 없이 눈발은 날리는데
또 어디쯤에서 눈물겨운 얘기를 끝내야 할까
도시 뒷골목길을 지나
늦게 귀가하는 갓 서른의 겨울
밑둥부터 마르는 수상한 시절의 코스모스와
소주 몇 잔에도 쉬이 비틀거리는 세상,
세상은 온통 얼어서 빛나는 것들뿐이었다
아프게도 반짝이며 일어서는 서릿발과
억장의 가슴으로 무너져내리는 서릿발 사이사이로
얼굴 없는 아니 창백한 풀꽃들은 처참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바라보라
안개와 어둠으로
세상이 더 많이 서러워질수록
밤새 관념투성이 정신들은
깊이깊이 발목이 빠져 쓰러지는데
다시 한번 바라보라
요소요소 척후병처럼 말없이 다가와
우리 절망의 심장을 속속들이 엿보고 있는
저 겨울 외등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라
끝내 빛을 거부하지 못하고
잠 깨어 바라보는 누구에게나
어둠이 남겨놓은 저 겨울 외등의 성역을

뜨거운 이마 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라
너무 멀어 오히려 절망이 되는 별빛도 아닌
이 지상의 가장 구체적인 불빛을
언제나 절망의 다른 이름은 관념이었다
그리하여 한 시대의 쓸쓸한 밤을 지켜줄 것은
오직 저 겨울 외등뿐일지니
풀꽃 하나가 세상의 한 모서리를 감당하듯
외등이 마련한 저마다의 성역을 향하여
산 자는 산 값으로 치열하라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값으로 치열하라

                 < 겨울 외등 > / 이원규

  
                 
                                                       ... 藝盤예반 *.*                          
                                                    

Winters Light · Chloe Ag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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