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가 그림에 기대어 모든 걸 작파하고
섬으로 떠날 때
나는 여전히 시골에 있었다
아니다, 가끔 이곳에도
안개는 휘감겨와
섬처럼 쓸쓸하고도 달콤한 꿈을 엿보이곤 했다
김형은 이를테면 스스로 하나의 섬이 되고자
南行을 이루었으리
편지는
자기를 완전히 적시는 비,
자기 중심적인 절망, 자기 중심적인 기쁨에 넘쳐서
머리맡 백열등은 내내 환하고
늦게 듣는 음악으로 눈 쌓인다
불을 거쳐온
한 줄기 겨울강 지켜보면
불안의 물이끼, 불면의 고기떼 모여 있고
오래 김형의 풍경 일부가 떠내려왔다
밤 동안 얼음 꺼지는 소리
늦은 한탄 따위로 목젖 붓고
새벽이면 강의 물소리는 빨라졌다
......떠나온 것이 단순히 그림만 그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
......그림은 오히려 눈물난다
......요즘 은화 식물에 빠져 있다
......허무한 식물, 솔이끼 고사리 우드풀 등속의 피어남이라니
김형의 적막은 그러나 온몸으로 부서지는
포말인데
조금씩 다치면서 이 뼈마디들
얼음 깨지고 얼음 어는 어두운 소리에 끼여 있다
......섬에서 바다는 쓰라림이고 추억의 트인 벌판이구나
......바다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단지 일망무제로 해서
매일 기막히다, 매일 익사한다
지도를 펴면 섬은 밤마다 치솟고
섬의 물길 가운데 해일로 일어나는
그리움과 쓸쓸함 겹쳐
나는 몇 권의 책을 새로 읽어나갔다
밤길 걸어오면 끝없는 길가 나무들
일제히 등 굽혀
울부짖는다
물소리 급하고 꽃샘 추위 시작할 때
동백 서너 송이 벙글었다, 편지는
자기를 돌아보는 적막한 사람의
어둔 향기와 그늘로 가득한데

                  < 적막한 사람 > / 송재학 

  
                 
                                                       ... 藝盤예반 *.*                          
                                                    

Chet Baker - My One and Only Love

 

'The Mirror Of S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을 위하여' ♬  (0) 2018.10.10
'물소뿔을 불다' ♬  (0) 2018.10.09
'시인학교' ♬  (0) 2018.10.06
'너를 기다리는 동안' ♬  (0) 2018.10.05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가장 희망적이셨습니다' ♬  (0) 2018.10.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