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생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특별한 전환점이
있다. 놀랍고, 어둡고, 잘못되고, 홀로 앉아 있는 곳, 하염없는 무감
 각과 공허의 날, 그런 밤이면 하늘에는 새로운 별들과 눈망울들이 
우리 가슴 속에 나타나게 된다.

폐허가 되어버린 나의 청춘에 오싹 몸을 떨게 되고 산산조각이 난
나의 사상들, 온 몸을 전율케 할 만큼 이지러진 꿈 위를 걸어가 보
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모두 먼지로 덮여 있었고 삶 자체
가 그 속에 파묻혀 버린 듯했다. 친구들은 아는 체 하기도 싫다는
듯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까지 믿고 있던 나의 사상들이
나를 냉정히 쏘아보는가 하면, 마치 수백년 동안 나와는 관계가 없
었다는 듯 낯선 표정으로 멀리 떨어져 갔다. 모든 것들이 나를 피
해가고 나는 거대한 공허와 바람소리 가득한 정적 속에 싸이게 되
었다. 나에겐 친근한 그 아무것도, 사랑할 어떤 것도 다정한 이웃
도 없었다. 내 삶은 그저 참을 수 없는 구역질처럼 치밀어 올 뿐이
었다. 그것도 마치 필요없는 것들로 가득 차, 오히려 성스러움이 모
욕받게 된 제단 같았고 어떤 아름다움이나 고귀함도 구역질나는 것
으로만 느껴지는 그런 것이었다. 모든 높은 것은 정복된 듯한 삶이
었다. 순수한 빛은 바래져 갔고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예감은 발에 
짓밟힌 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리워할 아무 것도, 제공할 아무 것도
없었고, 미워할 어떤 것도 없었다. 성스러운 모든 것들,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던 그 어떤 것들도 이미 빛과 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 인생의 파수병들은 모두 잠들어 버린 것이다. 다리는 전부 동강
이났고 먼 지평선은 푸르름이 없었다.


온갖 매력적인 것과 사랑하고픈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나자 나
의 정신은 난파선처럼 기진맥진해져 약탈이라도 당하고 난 것처럼
비참함을 느꼈다. 눈을 감은 채 무거운 육신을 질질 끌고 떠난다는 
말도 없이 문도 닫지 않고 밤이면 집을 비우는 몽유병자처럼 과거
의 습관에서 벗어나 나는 방랑했다.

누가 이 땅에서 고독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누가 이곳이 체념
의 땅임을 안다고 말하겠는가? 마치 나락(奈落) 아래를 허리를 굽
히고 내려다보듯 내 시선은 어지러워 졌고 끝을 찾아 보지도 못한
채 떨어져 버렸다. 이 체념의 땅을 헤맨 덕분에 내 무릎은 상처를
입고 있었고 지쳐 있었다. 그러나 나의 갈 길은 아직도 무한히 뻗어
있기만 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조용하고 슬픈 밤은 나를 잠들게 한다. 졸음과
꿈은 귀향하는 친구처럼 찾아와서 여행 보따리처럼 끔찍한 나의 짐
을 어깨에서 벗겨 주는 것이다.


당신이 타고 가던 배가 난파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육지가
보이고 당신을 구조하려는 사람이 헤엄쳐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까? 혹은 죽을 병을 앓다가 건강을 회복하여 정
원에 나가 처음으로 신선한 공기를 마셔본 일이, 또 상쾌해 진 혈관
이 고동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구원받은 자, 이
처럼 완쾌된 자와도 같이 감사하는 마음, 휴식, 빛, 평온함 등의
소용돌이가 나를 휩싸고 돌았다.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내게 다
정하게 목례해 오는 것을 그날 밤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도 보통 때와 달랐다. 별자리의 위치와 되돌아오는 길은 벌써 
결정되어 있는 친구의 유대감을 나의 삶 내부에 심어 주었다. 그리
고 영원한 것이 그 천체의 법칙과 함께 나와 잘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거칠은 벌판에서 가꾸어진 삶 속에서 하나의 금빛 자리를 발
견한 것 같았다. 그것은 하나의 힘이자 법칙이었다. 엄청난 경이로
서 내가 받아들인 것과 같이 옛것, 새것 할 것 없이 모두가 고귀한
수정 모양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 세상의 온갖 사물과 기적적인 것
과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며 나 스스로가
하나의 기적이다. 조용한 그리고 동시에 활동적인 놀라움이 된 것
이다. 주고 받고 하는 재산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장
높은 가치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 새로운 삶이 시작되다 > / 헤르만 헤세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황송문 역


     
                                                        ... 藝盤 *.*

The Beatles - A Day In Th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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