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새벽 / 도종환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 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무가지도 텅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 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 주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눈 덮힌 들판처럼 넓고 깨끗해져 그러는 건 아니고 지난날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온 발자국을 함박눈이 밤새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돌아선 골목 길 있어야 할 어려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내내 마음 무겁던 나날들과 지키지 못한 언약들도 눈처럼 다 덮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없는 것까지 많이 용서해 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풀벌레들 사랑의 음성 전해주고 몸을 가려준 풀숲처럼 나도 그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들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이 아침 내가 많이 너그러워져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내겐 강물 같고 남에겐 서릿발 같은 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습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면 저 눈처럼 덮어주는 일이 풍요로운 모습이 되고 용서가 빛나는 풍경이 되는 것처럼... Morning Snow · The Whiskey Was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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