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

아플 땐 기형도처럼 열무 삼십단 이고 장에 간 엄마 생각을 하든가 아니면 바람나서 도망간 엄마라도 있으면 그런 엄마 생각이라도 해야 하는데 '엄마'는 없고…… '퇴행'하고 싶어라 퇴행하면 나는 겨우 퇴계나 율곡이나 버트란드 러쎌 정도니 성교시 '엄마 엄마' 하며 젖꼭지를 빨아야 흥분이 된다는 어떤 칠뜨기처럼 지나가는 여자들이나 붙들고 엄마 엄마 해야만 하나 나는, 나는 온갖 못된 짓 때문에 와병중이지만 고열의 어린 아들은 단호하게 즈이 엄마조차도 부르지 않는다 도대체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안 먹던 아들이 별안간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여 好轉된 두 부자 병원 갔다 오는 길에 대구탕 일금 5000원짜리를 한 그릇씩 시켜먹고 왔다 아내는 내가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바꿔온 것인지 한 커다란 우산을 쓰고 또 타박타박 아들과 나 사이에서 차분히 걸었고 아플 때는 다들 순하고 선한 퀭한 짐승의 눈 아픈 짐승을 약올리는 짐승은 인간이라는 짐승뿐 "엄마, 우산 접어도 되겠다!" 굵은 빗줄기는 어느새 이슬비로 바뀌어 아물거리고 빨간불 초록불 초저녁 신호등 불빛이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은 특고압 전류처럼 아플 때 전신이 감내하는 '엄마'라는 이미지의 과부하 새빨갛게 작열하여 발광 섬광 비등 증발 기화! 생명체로서 우주의 核을 직관할 수 있는 순간은 아프지 말자 아프면 돈 없고 서럽고 약올림당해서 늙는다 생각해보라 의사는 아픈 사람 약올리지 않는가 어머니도 아픈 제 자식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을 나는 무수히 보았다 빨간불 초록불 신호등은 하나의 약속이다 한참 서 있다가 길을 건넜다.               < 아플 때...> / 김영승                                              ... 藝盤 ＊.＊        양병집 - 오늘같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