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우리를 마주치게 했다.
그믐밤 어둠으로 빚은 듯한 검은 영물.
고양이는 털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쓰레기자루 옆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구멍의 광채,
물질로만 말하자면
해묵은 가죽자루인 나를 꿰뚫고
업으로 말하자면
불어난 오물덩어리인 나를 꿰뚫으면서 쏘아보던
신비스런 광채.
이글거리던 불의 눈알.
물외의 일은 접어두고
말하자면 그렇다.
비닐이 터지고 국물이 흘러내리는
쓰레기자루 옆 고양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금
쓰레기 냄새 속에서 만나리라.
나는 들고 있던 쓰레기자루를 집어던졌다.
물러나던 검은 영물, 그 뒤의 일에 대해서는
지금은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를테면 축축한 쓰레기의 힘으로 불어난
고양이 가족의 근황,
어린 것들에게 오물을 먹이는
대도시의 굷주림 이야기
굶주림 이야기.
진척 없는 내 어두운 밤
그믐의 진실 따위는
글쎄,
다음에나 말할 수 있을는지.

           < 검은 고양이 >
/ 최승호 



     
                                        ... 藝盤예반 *.*
 


 
고양이 - 시인과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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