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에 서면 모두가 떠나는 이 같다' ♬

새벽녘 기적소리가 나의 날개였다면 산마을 간이역의 날개는 산겨드랑이부터 적시는 노을이었다 저녁 연기 피어오르면 널어둔 끝물 고추 갈무리하는 슬레이트 지붕, 키 낮은 집들은 더 이상 도시로 향한 철로의 끝간 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도 빈 역사를 돌봐주지 않고 또한 측은히 여기지 않는 찾아볼 사람 하나 없는 대합실 벽에 붙박힌 나무의자에 모여 앉은 노인들 박포장기 훈수 따라 내기 담배에 세월을 말아 올리고 있다 새벽이면 야반도주한 누이의 영혼처럼 가끔씩 이름 모를 들꽃 향기 무더기로 피어올라 간이역 전설에 신비스러움만 더해간다 벌레집 먹은 문설주에 바람은 드나들고 여전히 참꽃마리 하늘타리 광대나물 계절을 실어나르는 이곳 바람의 집에선 누구도 목적하여 기다리지 않는다           < 역 앞에 서면 모두가 떠나는 이 같다 > / 이상희                                                    ... 藝盤예반 ＊.＊      한영애 / 완행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