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한젊은이가 어두운 길거리에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불타 버린 집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오랫만에 전선에서 돌아오는 병사였던 모양이다.

그때 어두운 골목길에서 한 여인이 나타났다.

"주무시고 가세요".

젊은이는 대답이 없었다.

여인은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놀다 가세요, 네?"

"싫소, 난 갈데가 있는 사람이오."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그러나 어딘가 낯익은 듯한 목소리에 끌려 고개를 돌렸다.

이때 마침 희미한 가로등 밑에 이르러
서로의 얼굴이 비춰질 수 있었던 그들은 그만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얼마 뒤에야 그들은 서로 말도 못하고
서로 끌어안고만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쉴새없이 흘러 내리는 뜨거운 눈물로 서로의 얼굴을 비벼대면서.

그런데 그들은 왜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저 복바치는 설움,
그리고 너무도 그리웁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반가움,
그것 때문에 목이 메었던 탓일까?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의 뜨거운 눈물,
그 이상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황폐해진 도시의 골목에서 서로 만난 두연인들의 이야기.

이것은 실화가 아니라 외국 어느 작가의 한페이지짜리 소설을
기억 나는대로 옮겨 본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쨟으면서도 그것은 또 숱한 이야기들을
그 속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숱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에게 일러 주는
단 하나의 테마는 사람의 진실성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참된 애정에서는 상대방이 걸어온 과거에 대해서
또는 미래에 대해서도 질문이 없다는 것.

모든 것을 묻어 버리고 무조건 사랑하는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단 한가지 물을 것이 있다면 그동안 얼나마 괴로왔느냐는
위안의 말 한마디.

그리고 그 역경을 이해함으로써 오히려 서로의 애정의 밀도는
더욱 상승된다는 것이다.


오랫만에 찿아낸 애인이 매춘부가 되어 버린 걸 알았을 때,
오히려 더욱 뜨겁게 안아 줄 수 있었다는것.
그것이 바로 그러한 애정의 진실성을 일러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그 민족의 미래를 점쳐 보고 싶은 사람이 이러한
연인들을 발견 했다면 그는 필경 흐뭇한 미소를 띄웠을 것이다.

"저들이 머지않아 다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고야 말 것이다.
이 황폐한 도시에.
그리고 서로의 과오를 용납하고
괴로울 수록 더욱 사랑하는 이상,
저들의 미래는 필경 축복받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예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 김우종 (金宇鐘) 에세이 "오늘을 사랑하라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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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ed and Confused - Led Zeppe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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